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백야 / 남길순 본문
백야
남길순
나와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나와 마주칠 때가 있다
호텔에 누워 듣는 개 짖는 소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멀다
밤이 왔으나 죽지 못하는 태양
낮 동안
카프카의 무덤을 찾느라 묘지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카프카를 만났다
검은 묘비들이 살아 돌아오는 밤
클라이맥스로 짖어대다가 일순간
고요해지는 하늘을 본다
유대인 묘지 끄트머리쯤에
내가 찾는 카프카는 누워 있었다
그를 찾아야만 하는 간절한 이유라도 있는 듯
각혈하는 장미 한 송이 놓고
돌아설 때
한동안 잠잠하던 병이 도진다
이 불안의 시작이 어디인지
여름밤은 스핑크스처럼 창문 앞을 지키며
돌아가지 않는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소리는
밤새 끙끙거리고
곁에 누워있던 누군가 황망히 떠나간 것처럼
몸을 웅크리며 너는
이불을 둘둘 말고 있다
지구의 한 귀퉁이
주소를 모르는 이곳에서
—《현대시학》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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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길순 / 전남 순천 출생. 2012년 《詩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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