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이대흠 본문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이대흠
내가 없었을 때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세상은 짐승들의 것이었다
오래도록 세상은 젓갈처럼 깊어가고 나는
아무런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한 나라를 이루지도 못했다
지네인듯 발이 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처음보다
부피만 더 커진 몸뚱이로
나는 외길에 서 있다
(삼십여 년세상의 빛이 되진 못했지만 내 몸을 만들 때
나의 부모는 그 누구에게도 하청을 주지 않았음이 분명하
다 이따금 하자 보수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삼풍처
럼 무너질 염려가 없다 어쩌다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면 어
쩔 수 없지만 아직껏 까닭없었고 향후 삼십 년은 튼튼하리
라 내 몸 안을 방문중인 무수한 세균들이여 안심하라 내
안의 보일러는 반영구적이며 온도 쎈서는 고장나지 않는다
이따금 그대 향한 내 마음 욕정의 물탱크실에서 고수위 경
보가 울리고 그리움이 그치지 않고 흘러 넘치지만 내 몸
안의 길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의 오장육부를 쇼핑하는
자들아 그대들은 항상 따스한 곳에서 즐거이 양식을 구하
리라 내 몸 안의 세균들이여 질병이여 내 몸 안의 소주여
사글셋방이여 빌딩들이여)
내 몸엔 탐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북한산과 용두봉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는 이미 한강의 일부이며 그 강은
나의 일부이다 나는 매일
이 땅의 산과 강으로 호흡한다
누구도 나의 미래를 컨닝할 수 없고
살아 있다는 것으로 나는 얼마나
위대한가
시집<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에서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서봉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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