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박정원의 시 읽기(8)] 노을같이 바람같이/ 황송문 본문
노을같이 바람같이
황송문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뿌리 같은 거
꽃나무 뿌리 같은 거
깊이깊이 내려 뻗는 연민 같은 거
연민 같은 거
미련 같은 거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뒤척이다 헝클어지는 타래실 같은 거
이리저리 얽혀지는 인연 같은 거
인연 같은 거
보내놓고 돌아서다 되돌아보는
눈빛 같은 거, 사랑 같은 거
푸른 산 줄기줄기 칡뿌리 같은 거
목을 감고 뻗어나간 사랑 같은 거
흔들리는 차창 저만치
비껴가는 노을같이
모 이파리 사른사른
스치고 가는 바람같이
골짜기에 잠겼다가
풀려나가는 안개같이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노을같이 바람같이
막대로 뜬구름 가리키는 스님같이
이제는 정말 마음 두지 않으리
- 시집 <노을같이 바람같이> 1987.홍익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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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의 시 읽기(8)]
* 흔들리는 차창 저만치 비껴가는 노을같이, 모 이파리 사른사른 스치고 가는 바람같이, 골짜기에 잠겼다가 풀려나가는 안개같이…… 한동안 후배들에게 나직이 읊조려주던 작품이다. 언어 문자나 언어 명상으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는, 분별사량(分別思量)이 다 끊어진 경지를 내 마음의 입정처(入定處)라 한다면, 속뜰 깊이 들어앉아있는 연민 같은 거, 인연 같은 거, 사랑 같은 것들의 거처는 어디쯤에서 매듭짓고 있을까. 마음 두지 않는다고 완전히 사그라들게 될까. 막대로 뜬구름 가리키는 스님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노을같이 바람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평범한 일상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마음에 두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올해 고희를 맞는 황송문 시인께서 40대 중반에 쓰신, 인연과 사랑의 번민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직유 아닌 직유의 극명한 알레고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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