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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본문

좋은 시 감상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오선민 2010. 7. 21. 00:06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그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무더웠던 사람

죽어서 시원하라고 산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놔 두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1978년 시집 발간

- 바다와 섬과 고독의 노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집 발췌 (출판사 동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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