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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최호일의 「새가 되는 법」평설 / 홍일표

오선민 2010. 7. 28. 19:25

최호일의 「새가 되는 법」평설 / 홍일표

 

   새가 되는 법

 

     최호일

 

 

   매일 하늘을 날면서 밥을 해 먹을 것 새의 목소리와 성격으로 수술하고 천장과 바닥을 없애버릴 것

 

   일주일에 두 번 날갯죽지에 얼굴을 묻고 너무 캄캄해서 울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듯 잡았던 손을 놓고 흔들며 인간의 마을에서 잊혀질 것

 

   새장을 만들어 놓고 새장을 부술 것 하얀 새의 천 번째 울음소리로 얼굴을 씻고 하얗게 될 것 어둠이 묻어 있는 바람을 끌어다 덮고 자면서 오월이 오면 오월을 등에 지고 다닐 것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이 깨 새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고 빠져 나갈 것 시를 쓰고 짝짝 찢어서 바람에 날린 후 가장 멀리 날아 갈 것

 

   자신이 새인 줄 모르고 새처럼 날아가다가 깜짝 놀랄 것

 

   냄새 나게 새는 왜 키우니 하고 돌을 던지면 맞아서 죽을 것 죽어서 매화그림 속으로 들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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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통수를 치거나 뚜껑 열린 시가 맛있다. 단정하게 뚜껑을 닫아놓은 시는 왠지 답답하고 지루하다. 응축도 생략도 없고, 광기나 도취도 없이 뜻 없이 지루하게 중얼거리는 시는 재미가 없다. 언어의 평면적 서술만 있고 언어의 미학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들은 아무 맛도 없이 가짓수만 많은 음식 같다.

   언어의 광휘가 있는 시, 사유의 날이 번쩍이는 시는 읽는 이를 긴장시키고 몸을 떨게 한다. 상식적인 내용을 상투적 방법으로 되풀이하는 많은 시들 앞에 아주 특이한 어법을 가지고 나타난 시인이 있다. 

   최호일, 그의 시는 미래파와는 또 다른 외계의 언어이다. 단순한 현실 재현적 시도 아니고, 현실 바깥으로 멀리 달아난 시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시들과는 전혀 다른 층위에 그의 시가 놓여 있다. 미래파 이후 새로운 시적 활로를 열어가고 있는 신인이지만 아직 그에 대한 조명은 충분치 않다.

   최호일 시인은 시단의 아나키스트이다. 기존의 시문법으로 접근했다가는 낭패하기 쉽다. 그의 시는 늘 새로운 독법을 요구한다. 그의 전복적 사고는 작품 도처에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발목이 잘리기도 하고 머리통이 날아가기도 한다. 시를 읽다 말고 내 다리 어디갔지 하고 중얼거릴지 모른다.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여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시를 읽을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다. 

   나는 지금 친절한 처방전을 쓰고 있는 셈이지만 시로 들어가기 전에 내 처방전은 버리는 것이 좋다. 주저하지 말고 일단 입에 넣고 씹다 보면 묘한 향기와 맛이 마리화나처럼 전신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혼몽해질 것이다. 그 혼몽함 속에 자신을 놓아버리면 그의 시와 함께 망망대해로 흘러갈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한 순간이 행복할 것이고, 몸과 마음을 묶던 생의 경계 밖에서 한 사나흘 어슬렁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새가 되는 법」은 비루한 일상을 뛰어넘는 비법을 묘사하고 있다. ‘새의 목소리와 성격’을 갖고 ‘새장을 만들어 놓되 새장을 부’수는 것이다. 그리고 ‘하얀 새의 천 번째 울음소리로 얼굴을 씻고 하얗게’되는 것이다.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훨훨 날아가다가 냄새 나는 새를 왜 키우냐고 돌을 던지면 기꺼이 돌을 맞고 매화 그림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이 시의 전언이다. 새는 자유이고 일탈이고 영성이다. 숨 막히는 일상의 삶을 관통하는 큰 구멍이고 안팎이 소통하는 창문이다. 새를 키우고 마침내 새가 되는 것은 존재의 혁신이요 완고한 사유의 외피를 벗고 날아오르는 일이다.  

   존재의 도약과 비약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의 화자는 ‘새의 그림자를 만들어 놓고 빠져 나’가는 일과 시를 찢는 일로 묘사하고 있다. 활달한 이미지의 전개가 막힘이 없고, 자유자재하며 이미지와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불꽃이 튄다. 연과 연으로 이어지는 낯선 시의 문법이 신선한 정서적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시의 매력이다.

   새로운 시의 짐을 짊어진 그의 어깨가 무겁다.

 

홍일표 (시인)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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