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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사적인 연애방식 / 하린 본문

좋은 시 감상

꽃의 사적인 연애방식 / 하린

오선민 2011. 5. 31. 11:50

 

꽃의 사적인 연애방식

 

 

   하 린

 

 

 

 

   앞집 누나가 교복을 찢고 도시로 날아간다 날아간 자리에 나팔꽃은 피지 않고 온종일 축축한 웃음이 비릿한 생각을 타고 올라간다 꽃의 심장이 태양 아래서 팔딱거리듯 목구멍에서 욕(慾)이 팔딱거린다 꽃의 맨살을 찢고 싶은 밤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아침마다 눈깔이 뒤집히도록 태양에게 용서를 구한다 죄를 말리는 데는 도덕적인 태양이 최고

더듬이가 길어진 그림자가 자꾸 누나의 여백을 훔친다 심장이 만삭으로 부풀어 오르고 어제의 비굴이 오늘의 비굴을 복제한다 꽃이 내뱉는 기침소리가 자꾸 들린다 누나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간 곪아터진 상상들을 쭉쭉 빨아 삼키고 싶다 누나와 내가 나눠 가진 울음과 웃음이 죽지 않고 나비로 환생한다면 꽃을 껴안는 불순한 밤은 고독한 전설로 기록이나 될까 구질구질한 혀가 누설한 꽃의 말들은 이번 생이 다하기 전에 삭제될 것이다 사적인 물음만 던지다 하릴없이 썩어 들어갈 벌겋게 독이 오른 맨살*들의 사적인 연애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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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겋게 독이 오른 맨살 : 오규원의 「사내와 사과」에서 인용.

 

 

 

 

                            —《시인세계》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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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시 당선.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계간《열린시학》편집장.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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