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몸붓 / 안성덕 본문
몸붓
안성덕
1
지렁이 반 마리가 기어간다
허옇게 말라가는 콘크리트 바닥에
질질 살 흘리며 간다
촉촉한 저편 풀숲으로 건너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라고
토막 난 몸뚱이로 쓴다
제 몸의 진물을 찍어
평생, 한일자 한 자밖에 못 긋는 저 몸부림
한나절 땡볕에 간단히 지워지고야 말
한 획
2
고무타이어를 신었다
중앙시장 골목,
참빗 사세요 좀약 있어요 고무줄도 있어요
삐뚤빼뚤 삐뚤빼뚤
좌판에 널린 밥줄을 풀어서 쓴다
바싹 마른 입에 거품을 물려는 듯
붓 끝에 진땀을 찍으려는 듯
제 몸 쥐어짜내며 기어가는 사내
몽당연필 같은 몸뚱이
한 줄 더 써내려 필사적으로 끼적댄다
한 자 한 자 몸뚱이가 쓴 바닥을 지우며
기억뿐인 다리가 따라 간다
—《열린시학》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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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2008년 《시와 정신》신인상 당선, 2009년 〈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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