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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붓 / 안성덕 본문

좋은 시 감상

몸붓 / 안성덕

오선민 2011. 8. 5. 15:45

몸붓

 

   안성덕

 

 

 

   1

 

지렁이 반 마리가 기어간다

허옇게 말라가는 콘크리트 바닥에

질질 살 흘리며 간다

촉촉한 저편 풀숲으로 건너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라고

토막 난 몸뚱이로 쓴다

제 몸의 진물을 찍어

평생, 한일자 한 자밖에 못 긋는 저 몸부림

한나절 땡볕에 간단히 지워지고야 말

한 획

 

   2

 

고무타이어를 신었다

중앙시장 골목,

참빗 사세요 좀약 있어요 고무줄도 있어요

삐뚤빼뚤 삐뚤빼뚤

좌판에 널린 밥줄을 풀어서 쓴다

바싹 마른 입에 거품을 물려는 듯

붓 끝에 진땀을 찍으려는 듯

제 몸 쥐어짜내며 기어가는 사내

몽당연필 같은 몸뚱이

한 줄 더 써내려 필사적으로 끼적댄다

한 자 한 자 몸뚱이가 쓴 바닥을 지우며

기억뿐인 다리가 따라 간다

 

 

 

                             —《열린시학》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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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2008년 《시와 정신》신인상 당선, 2009년 〈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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