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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만월 (외 1편) / 송진권 본문

좋은 시 감상

추석 만월 (외 1편) / 송진권

오선민 2011. 8. 8. 10:36

 

추석 만월 (외 1편)

 

 

                                  송진권

 

 

 

 

애탕글탕 홀아비 손으로 키워낸 외동딸이

배가 불러 돌아온 거나 한가지다

동네 각다귀 놈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한 뒤 한 이태 소식 끊긴 여식

더러는 부산에서 더러는 서울 어디 식당에서

일하는 걸 보았다는 소문만 듣고 속이 터져

어찌어찌 물어 찾아갔건만

코빼기도 볼 수 없던 딸년 생각에

막소주 나발이나 불던 즈음일 것이다

호박잎 그늘 자박자박 디디며

어린것을 포대기에 업고

그 뒤에 사위란 놈은

백화수복 들고 느물느물 들어오는 것 같은 것이다

흐느끼며 큰절이나 올리는 것이다

마음은 그 홀아비 살림살이만 같아

방바닥에 소주병만 구르고 퀴퀴하구나

만월이여

그 딸내미같이 세간을

한번 쓰윽 닦아다오

부엌에서 눈물 찍으며 조기를 굽고

저녁상을 볼 그 딸내미같이

 

 

 

      

   저 샘

 

 

 

휙휙 구름이 날고 있어요

수천 마리 벌떼가 붕붕거리고

가쁜 숨 토해내며 엉킨 몸엔

꽃들이 와서 피어나요

조금 더 조금만 더 가면

나는 하늘의 별을 흩어버릴 수도

달을 거머쥘 수도 있어요

이제 거의 다 와가요

아으 조금만 조금만 더

 

무지개를 잡아타고

당신 곁을 날아가는 봉황을 붙잡아요

달을 물어뜯는 검은 개들은 쫓아내고

꽃술 간질이며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겐 돌멩이를 던져요

이제 거의 다 와가요

당신 머리카락 좀 어떻게 해봐요

자꾸 입에 들어가잖아요

숨소리 좀 죽여요

누가 다듣겠어요

이제 다 와가요

 

몸 늘이고 팔 뻗어 꽃 핀 저 나무를 붙잡아요

은하수 한 귀퉁이 헐어내

땅으로 쏟아내고

움켜쥔 별들은 흩어버려요

축 늘어진 몸뚱이 속에

어쩌면 우린 수수만리 흐르고 흐를

억조창생(億兆蒼生)을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잉태할지도 몰라요

아직 내게서 나가지 말아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내 속에서

아흐

조금만 더

 

—시집 『자라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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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에 「절골」외 4편 당선. 현재 '젊은시' 동인으로 활동 중. 시집『자라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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