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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안도현의 「삶은 감자」감상 / 권정일

오선민 2011. 8. 14. 17:20

 

안도현의 「삶은 감자」감상 / 권정일

 

 

 

 

 

    삶은 감자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 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

안도현 /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84년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모닥불』『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 바닷가우체국』『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간절하게 참 철없이』.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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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소반에 포근포근 김을 말아 올리던 감자가 허기를 채워주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 뜨거움이 삭혀낸 치명적인 맛은 언제나 연한 삶! 삶의 현장에 있었다. 감자에 색을 입혀 맛난 생을 말하는 시인의 시선이 곱다. 생이라는 의미가 되기 위해선 세상에서 오는 모든 공격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야 한다고, 견디지 않는 자기완성은 없다고 시인은 말한다. '김치가 머리에 얹히듯' 세상 이치에 간을 맞추라 한다. 세상이 찌르면 모든 것 내주고 비열하게 씹어도 이를 악물고 버티라 한다. 눈 질끈 감고 무르익는다는 것 그것은 단단한 각오일까.

 

 

권정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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