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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김태정의 「물푸레나무」감상 / 김선우

오선민 2011. 8. 25. 13:17

김태정의 「물푸레나무」감상 / 김선우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 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인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 김태정 -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雨水」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 있음.

◆ 출전_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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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한 지 13년 만에 시집 한권을 펴내더니 그 후로 7년이 되도록 다음 시집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이 시인이 지금 아주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아래 그녀가 깃들어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 되도록 한번 찾아가 보지도 못했습니다. 순수랄지 순정함이랄지 하는 말이 에누리 없이 맞춤하게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그녀를 기억합니다.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이런 시인들이 있어 세상의 파르스름이 그나마 유지되어 가는지도 모르는데……. 물들이고 스며드는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시인의 파르스름. 잔잔과 찬찬의 파르스름. 가난한 연인들이어야 제격일 파르스름. 가장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슬픈 빛깔 파르스름이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어딘가 물푸레나무 가지 같은 등을 다독여주는 환하고 외로운 그림자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푸레나무 숟가락으로 서로에게 밥을 떠 먹여주고 있는 그런 사랑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선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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