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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나희덕의 「누가 우는가」감상 / 고규홍

오선민 2011. 8. 18. 18:54

  나희덕의 「누가 우는가」감상 / 고규홍

 

 

          누가 우는가

 

                                                나희덕

 

바람이 우는 건 아닐 것이다

이 폭우 속에서

미친 듯 우는 것이 바람은 아닐 것이다

번개가 창문을 때리는 순간 얼핏 드러났다가

끝내 완성되지 않는 얼굴,

이제 보니 한 뼘쯤 열려진 창 틈으로

누군가 필사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울음소리는 그 틈에서 요동치고 있다

물줄기가 격랑에서 소리를 내듯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좁은 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창문을 닫으니 울음소리는 더 커진다

유리창에 들러붙는 빗방울들,

가로등 아래 나무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견딜 수 없는 울음은 빗방울들의 것,

나뭇잎들의 것,

또는 나뭇잎을 잃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의 것,

뿌리 뽑히지 않으려고, 끝내 초월하지 않으려고

제 몸을 부싯돌처럼 켜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창 밖에 있다

내 안의 나무 한 그루 검게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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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따라 지난여름의 기억이 흩어진다. 미친 듯 불어온 비바람에 생명을 잃은 젊은 그들이 떠오른다. 파란 번갯불 빛에 그들의 보드라운 얼굴이 실루엣 되어 스친다. 바람결에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에는 울음 소리가 담겼다. 떠나지 않는 기억이 눈물 방울 되어 나뭇잎에 다소곳이 내려앉는다. 채 흘리지 못한 지난여름의 눈물이다. 바람도 빗방울도 눈물을 머금은 채 여름의 꼬리를 물고 기억 속으로 고이 묻힌다. 아침 해 올라온다. 황칠나무 이파리 위에 흘린 눈물 방울이 마른다. 어지러운 세상살이의 세월은 서서히 부식된다. 가는 세월, 잊히는 기억이 아쉽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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