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자비출판 / 이화은**감상/박완호 본문
자비 출판
이화은
어떤 시인은
창작 지원금이라는 불룩한 이름으로 시집을 내고
시집을 냈다 하면 매번
기름진 상금의 과녁을 명중시키는
명사수 같은 시인도 많은데
시가 두엄두엄 쌓이면
나는 또 한 번 내 시에게 미안해진다
등록금 없이 등 떠밀어 학교 보내는
무능한 가장처럼
부실한 혼수에 얹어 시집보낸
좌불안석 딸 둔 에미처럼
짝 없이 늙어가는 저것들을 또 어찌해야 하나
세상의 자비는 늘 내게서 너무 멀리 있으니
내 피와 살을 먹여 키운
둥기둥기 어여쁜 내 새끼들 살가운 문둥이들
후한 인세라는 꽃가마로 모셔갈, 그런
대자대비 출판사는 진정 없는 것일까
두엄더미위에 노란 민들레꽃 한 송이
철없이 방긋 웃는, 지금은 다시 詩같은 봄
- 계간《주변인과 시》 2010년 가을호
☞
■ 이화은 시인의 詩,「자비 출판」
이 땅의 시인이 그리는 슬픈 풍경화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를 쓰는 게 너무 행복해서,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시인이 되기를 꿈꾸기 시작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으리라. 그때만 해도, 아니 시간이 더 지나 그토록 간절히 꿈꾸었던 ‘시인’이 되었던 순간까지만 해도 이 땅의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아픈 일이란 것을 어찌 상상이라도 했을까.
여기 한 시인이 그려낸, 이 땅의 시인만이 그릴 수 있는 가슴 아픈 풍경화가 있다.
만여 명이 넘는 시인이 존재하는 나라. 한 해에만도 천여 권을 넘는 시집이 출간되는 나라. 가히 시의, 시인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하지만 그것은 이름 있는 몇몇 시인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이화은 시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창작 지원금이라는 불룩한 이름으로 시집을 내고/ 시집을 냈다 하면 매번/기름진 상금의 과녁을 명중시키는/ 명사수 같은 시인”들 말이다.
그런 그들과는 달리 이름 없는 대다수의 시인들은 시집을 내야 할 시기가 되면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어떤 출판사에서 내야 하나,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어렵게 시집을 내면 누가 내 시를 읽어주기는 할까 하는 고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또 한 번 내 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리 미안해한다 한들 세상은 요지부동인 것을.
“세상의 자비는 늘 내게서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자비는 慈悲이고, 또한 自費이다. 어쩌면 自非, 혹은 自悲일지도 모르겠다. “내 피와 살을 먹여 키운/ 둥기둥기 어여쁜 내 새끼들 살가운 문둥이들”을 “등록금 없이 등 떠밀어 학교 보내는/ 무능한 가장” 같은 시인의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랴.
(정말 큰일이다. 어느덧 시집을 묶어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시는 이미 ‘두엄두엄’ 쌓여 있는데 선뜻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아무데도 없고, 먼저 찾아가서 시집을 내달라고 부탁할 만한 주변머리도 없고, 어디서 무슨 지원금을 주겠다는 말도 들리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시집을 내봤자 사서 읽어주는 사람도 없을 테고 ……)
정치판이나 재계에만 기득권 집단이 있는 게 아니다. 소위 문단이라고 불리는 사회에도 기득권 집단이 존재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들 중에는 일류로 대접받는 시인들이 있고, 삼류로 취급받는 시인들이 있다. 그러나 시에 어찌 일류니 삼류니 하는 구분이 존재하겠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이 시대의 시인들이란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독자로부터 버림받은 불쌍한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현실 앞에서 일류니 삼류니 하며 따지는 모습이라니.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라 꿋꿋하게 시인의 길을 걷는다. 사실 시인이란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요 세계, 하나의 우주가 아니겠는가. 자꾸 주변을 탓하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다만 제 살과 피로 시를 빚어낼 뿐. 그것으로 세상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워낼 뿐. 그것으로 제 우주에 소박한 집 한 채를 쌓아올릴 뿐. 나머지는 시인의 몫은 아닌 것이다.
“피와 살을 먹여 키운” “ 어여쁜 내 새끼들”을 “후한 인세라는 꽃가마로 모셔갈, 그런/대자대비 출판사”는 비록 없지만, 시인은 “두엄더미위에 노란 민들레 꽃 한 송이/ 철없이 방긋 웃는” 詩같은 봄을 꿈꾸는 것이다.
이 시를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시인들끼리의 술자리에서 뒷담화로 주고받기에 더 어울리는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바꾸려면 어려운 말을 먼저 꺼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을 뿐 쉽게 꺼내기 힘든 생각을 시로 잘 표현해낸 이 시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게다가 시를 읽는 사람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돌 만큼 나름대로 재미있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기까지 하니 한 마디로 금상첨화라고 할 만하다. 마치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조금만 더 능청을 떨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테지만 말이다.
이런 시를 읽을 때면, 남의 일만이 아닌 나의 일이기도 해서 그런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덜 성숙한 까닭이리라. 읽을수록 아프고, 그만큼 즐거워지는 시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시는 이런 시를 만날 수 없는 세상에서 시인으로 살고 싶다. (박완호)
- 계간 [주변인과 시] 2010년 겨울호
[출처] 이화은 시인의 詩, '자비 출판' / 박완호|작성자
'시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귓가에 詩 울림_ 송진권의 「추석 만월」/ 박성우 (0) | 2011.09.19 |
---|---|
문태준의 「한 호흡」감상 / 고규홍 (0) | 2011.09.19 |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1년 뒤 (0) | 2011.08.25 |
정끝별의 「처서」감상 / 고규홍 (0) | 2011.08.25 |
김태정의 「물푸레나무」감상 / 김선우 (0) | 2011.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