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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아주아주 작은 집 / 김선태

오선민 2011. 10. 20. 17:17

아주아주 작은 집

 

                                         김선태

 

 

바닷가에 사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아시나요

그들이 사는 아주아주 작은 집을 눈여겨 본 적 있나요.

 

날마다 갯벌 위에 길을 내며 엎어져 있는 갯고둥의 집

소라나 고둥의 빈집에 세 들어 사는 소라게의 집

평생을 갯바위에 붙어사는 따개비, 석화, 홍합의 집

뻘밭에 구멍을 내고 사는 짱뚱어, 갯지렁이의 집……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지만

무심코 발로 밟기만 해도 깨지고 망가져버리겠지만

그들의 집이 있어 변방의 바닷가는 쓸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집이 있어 변방의 바닷가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일생이 있고 세계가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도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집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집은 너무 크지 않나요

우리가 가진 것 또한 너무 많지 않나요.

 

바닷가에 사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아시나요

그들의 이름을 다정한 친구처럼 불러본 적이 있나요.

 

 

—《문학사상》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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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 1960년 강진 출생. 1993년 〈광주일보〉신춘문예와 월간 《현대문학》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 시집 『간이역』『작은 엽서』『동백숲에 길을 묻다』『살구꽃이 돌아왔다』, 평론집 『풍경과 성찰의 언어』등. 현재 목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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