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물 끓이기 / 정양 본문
물 끓이기 / 정양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국수나 삶으려고 물을 끓인다
끓어오를 일 너무 많아서
끓어오르는 놈만 미친 놈 되는 세상에
열받은 냄비 속 맹물은
끓어도 끓어도 넘치지 않는다
혈식血食을 일삼는 작고 천한 모기가
호랑이보다 구렁이보다
더 기가 막히고 열받게 한다던 다산 선생
오물수거비 받으러 오는 말단에게
신경질 부리며 부끄럽던 김수영 시인
그들이 남기고 간 세상은 아직도
끓어오르는 놈만 미쳐 보인다
열받는 사람만 쑥스럽다
흙탕물 튀기고 간 택시 대문에
문을 쾅쾅 여닫는 아내 때문에
'솔'을 팔지 않는 담뱃가게 때문에
모기나 미친 개나 호랑이 때문에 저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
배고픈 한밤중을 한참이나 잊어버리고
호랑이든 구렁이든 미친개든 말단이든
끝까지 끓어올라 당당하게
맘 놓고 넘치고 싶은 물이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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