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모네의 수련 연못 본문

그림으로 읽는 철학

모네의 수련 연못

오선민 2011. 11. 24. 09:15

처음 연꽃을 보고 놀란 곳은 실상사에서였습니다. 연못에 연꽃이 시들어 꽃 피는 시기가 막 지났구나, 하며 아쉬워했는데, 다음날 아침 찬란히 피어나는 연꽃을 보았습니다. 연꽃이 햇살에 반응하며 살아나는 거였습니다. 소르르 소름이 돋았습니다. 꽃의 매혹! 그 무덥던 날, 얼마나 오랫동안 망연히 연못을 바라봤을까요. 폴짝거리며 연잎 사이를 뛰어다니는 개구리는 물수제비를 만들고, 바람이 불면 물결이 생기는데, 눈부신 햇살은 존재하는 모든 것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맑고 투명하고 화려하게 빛났습니다. 그 세상에 여왕처럼 도도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 햇살이 내리고 바람이 부는 연못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꽃은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낸 후 꺾어도 되는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생리를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구나, 하고.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모네에게는 수련이 있습니다. 수련은 모네의 사랑이었습니다. 중년부터 이어진 평생의 사랑. 말년에 녹내장에 걸려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황색과 붉은색 없이 온통 블루인 말년의 그림들이 그의 병의 증거라고, 그 병에 걸리면 사물이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하지만, 그때 모네의 수련은 경계와 경계를 지우면서 훨씬 몽환적이고 훨씬 차분해지며 훨씬 신비해집니다. 그러니 의사들의 시각에서 병인 것이 쟁이의 시각에선 그것은 인생, 그것은 구도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녹내장 이후의 그림들을 더 좋아합니다.

 

 

저 그림, 좋지요? 참 좋습니다.(수련 연못, 1899년, 88×9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연못이 온통 생명 있는 것들로 꽉 차 있고 물밖에도 나무들이 무성한 것이 한여름입니다. 빛의 화가 모네는 빛 속에서 사물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즐겨 그렸다지요? 사실 본래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관념과 편견이 덧칠된 것인 경우가 대부분 아니겠습니까? 모네를 따라 연못가에 앉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풀잎은 푸르지만은 않고 연꽃은 희지만은 않다는 것을. 빛에 따라, 바람에 따라 존재하는 것들의 놀이가 달라지며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림 속의 저 일본식 다리는 모네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지베르니에서 모네는 꽃을 심고, 다리를 놓고,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집을 사랑하고 뜰을 사랑해서 돈만 생기면 정원을 넓히고 가꿨습니다. 처음에는 그림까지 그릴 생각은 아니었다지요?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아름다운 것에 압도당한 화가가 어찌 자기가 본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물과 반사광이 어우러진 연못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렇게 쓰고 있는 그는 마침내 자신이 본 아름다움을, 수련 연못을, 수련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수련이 왜 수련인지 아십니까? 물위의 꽃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수련(睡蓮)의 수는 잠잘 수(睡)입니다. 수련은 태양빛이 아주아주 강렬해야만 물속에서 천천히 도도하게 올라와 화사하게 피어나다가 빛이 조금이라도 시들해지면 물속으로 돌아가 잠들어버립니다. 재밌지 않나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에는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차라리 고독 속에 침잠하면서 내공을 기르라고, 그것이 준엄한 생명의 법칙이라고 선포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모네는 수련을 모두 지베르니에서 그렸습니다. 지베르니는 원래부터 인연 있었던 터가 아니라 여행 중에 모네가 찾은 곳이었습니다. 1840년생인 모네는 1879년, 사랑하는 아내 카미유를 잃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생의 한 매듭을 짓게 되는 불혹의 나이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습니까?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소중한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모네는 기차여행을 하다 마음이 머무는 곳을 보았습니다. 그곳이 지베르니였지요. 모네는 지베르니가 아주 좋았나 봅니다. "지베르니는 정말 찬란한 곳입니다." 마음이 동하는 곳에서 살림을 꾸리다 보면 장소가 내게 힘을 주고 있음을 느끼지 않나요? 43세의 모네는 지베르니로 이사하고, 거기서 또 43년을 살다 그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저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햇살과 물이 만나 반짝이고 물결과 바람이 만나 일렁이는 세계에서 생명을 부여받은 연꽃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햇살과 물과 바람 없이 연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한 송이 꽃 속에는 우주가 들었고, 우주는 한 송이 꽃, 세계일화(世界一花)입니다.

<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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