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본문

그림으로 읽는 철학

오처드슨의 ‘아기도련님’

오선민 2011. 11. 24. 09:18

아이는 생각보다 눈치가 빠릅니다. 누울 자리를 보지 않고는 발을 뻗지 않습니다. 영국 화가 오처드슨이 그린 '아기도련님'을 보십시오. 아기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지요? 아기가 저렇게 엄마가 부쳐주는 부채에 반응하며 천사처럼 노는 건 아기의 마음을 읽어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라는 말에서 권위를 벗기면, '엄마' '아빠'가 됩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은 지극한 사랑의 말입니다. 지금 저 상황의 아기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빨리 배우게 되는 바로 그 말도 "엄마"일 것입니다. 그 말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가슴에서, 배에서 나오는, 본능적인 말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말이기도 합니다. 그림 속 엄마와 아기의 관계를 보십시오. 저 시절 누가 있어 저 사이를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윌리엄 퀼러 오처드슨 '아기 도련님' 1886년, 캔버스에 유채, 108×166㎝, 내셔널 갤러리 오브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아이에게 빛이 나지요? 그런 아기의 공간에 걸맞게 주변이 온통 훈훈합니다. 의자도 훈훈하고, 포대기도 훈훈하고, 하다못해 부채도 훈훈합니다. 저 훈훈한 노란 빛을 완성하는 것은 엄마의 따스한 눈빛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따스한 미소나 아빠의 듬직한 품 같은 것 없이 세상을 믿게 되지 못합니다. 엄마의 눈빛이 공감에 인색하면 아이는 분노가 많은 인간이 되기 쉽고, 아빠의 품이 아이를 거절하면 아이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다가 스스로 함정을 파는 인간이 되기 쉽습니다. 당신의 엄마, 아빠는 어땠습니까? 엄마, 아빠라 불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당신이 기억하는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도란도란 어린 시절의 나를, 너를, 그리고 우리를 기억하며 불러내며 우리 속의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느껴보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공깃돌이 되어 놀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게 됩니다.

저 만큼 아기였을 때, 조금 더 컸을 때 나는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아빠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사춘기 때 내가 기억하는 친구들은 어떤 모습인지, 그러다 보면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원형이 보입니다.

어린 시절과 잘 놀다보면 지금의 나의 그늘이 어디서 왔는지를 보고 자기 자신과 잘 놀 수 있는 때가 오지만, 내가 나의 그늘을 알아채지 못하는 한 나는 나의 그늘 아래서도 쉴 수가 없습니다.

이어령 선생의 딸이 며칠째 검색어 상위권이네요. 이민아씨가 기억하는 그늘에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바빴답니다. 늘 바쁜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그 팔에 기대 놀고 싶은데, 배고프고 피곤하신 아버지는 "밥 좀 먹자"며 사랑하는 딸을 밀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풍경일 수 있는데 나도 찡, 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에 익숙한 어른이라면 잘나가는 아버지를 둔, 철부지 어린 딸의 투정처럼 보고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아빠'라는 말의 감수성으로 세상을 보면 그 자연스러운 풍경 속에서 어린 딸이 받았을 상처가 간단치 않음을 눈치챌 것입니다. 나는, 밥 먹기 위해 자신을 밀어내는 것을 보고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이민아씨 말에 함께 아팠습니다. 어린 딸에게 아버지는 무조건 좋은 첫사랑인데, 그 첫사랑이 거절당한 사랑인 것이니까요.

물론 실제로 이어령 선생이 딸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딸이 실명 위기에 처하자 생을 걸었던 아버지이기도 했으니까요. 그거 아십니까? 동생이 기억하는 엄마 아빠가 언니나 오빠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달라 꼭 다른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 같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니 실제보다 중요한 건 아기의 느낌입니다. 나의 느낌이나 기억은 사실에 의해 평가받고 검증되어야 할 죄인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내 삶의 파수꾼입니다. "꿈이라도 좋겠어, 느낄 수만 있다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억창고를 열어보는 일은 내게는 꿈을 꾸는 일과 비슷합니다. 외면하지 말고, 억압하지도 말고 충분히 느껴야 삶이 풍부해집니다.

< 이주향 | 수원대 교수·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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