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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이만섭] 단단한 물

오선민 2015. 3. 26. 22:59

 단단한 물

 


         이만섭    

  


폭포 아래서 물은 이마뿐이다  

  

하얗게 빛나는 날개를 달고 앞장서서 뛰어내리는 이마,

이마들이 펼치는 근육질의 퍼레이드  

   

바람에 찢기고 바위에 부딪히며

더러 비산하여 허공에 물안개로 흩어져도

더욱 단단해진 이마는

고삐 풀린 말처럼 질주하고 있다  

 

보다 못해 곰곰 숫자를 센다

한, 두, 세, 네..... 서른아홉, 마흔, 마흔하나

단전된 한 호흡이 가빠질 때까지

 

그럼에도 호흡은 호흡의 일,

더욱 드세게 내달린 이마에 들이받힌 둥근 용소가

멍이 들어 퍼렇다  

  

저쯤이면 백번도 더 까무러치고 말 일인데

물은 매번 물거품 속을 헤엄쳐 나와

지느러미를 단 물고기처럼

폭포 아래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존재의 연대기를 이마로 쓰는 물을 보았다


「문학광장」2015 1, 2월호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저녁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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