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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스크랩] 신경림의 `그림`이라는 시

오선민 2015. 4. 1. 11:47
신경림의 「그림」이라는 시

강인한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은 방랑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지 못할 현실의 굴레에 얽매여 훌쩍 바람같이 여행을 떠나지 못할 뿐이지요. 신경림 시인은 전국의 구석진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민요를 채록하는 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현대시라는 난해한 괴물도 실은 노래로부터 나온 것 아니던가요.
여행― 그 매력은 떠남에 있습니다. 가족도 잊고, 생활도 잠시 잊고, 해야 할 일도 잊고 바보처럼 나를 비우고 떠나면서 만나는 것들. 여행지에서 얼굴을 스치는 낯선 공기,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산과 나무 혹은 길가에 핀 풀꽃 하나조차 심상할 수가 없습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사람살이에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 나는 동의합니다.
허나 정작 떠남에 앞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막상 홀가분하지만은 않습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의 핑계를 직장이나 이웃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야 하고, 빈틈없이 챙겨야 하고. 번거로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내 아내에게 나는 아예 여행을 싫어하는 몰취미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몇 년 뒤에 정년퇴임을 하게 되면 함께 여행이나 즐기자면서 그러기 위해 내가 꼭 운전을 배워야 한다고 성화입니다. 그런 정도의 여행을 위해서 나는 운전을 배우고 차를 사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 같은 사람까지 차를 가지게 되면 우리 나라는 전체 인구의 반이 차를 소유하게 되리라는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기름 한 방울도 외국에서 사다 쓰는 형편에.
여행은 떠남에 매력이 있지, 여행을 마친 돌아옴에는 허전한 마음과 미련이 남을 뿐입니다. 정년 후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나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애써 구석진 곳까지 비집고 들어가서 구경할 비경이 우리 나라에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배낭을 멘 채 시적시적
걸어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주막집도 들어가보고
색시들 수놓는 골방문도 열어보고
대장간에서 풀무질도 해보고
그러다가 아예 나오는 길을
잃어버리면 어떨까
옛사람의 그림 속에
갇혀버리면 어떨까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내가 오늘의 그림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의 그림에서
빠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배낭을 메고 밤차에 앉아
지구 밖으로 훌쩍
떨어져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 신경림 「그림」

이 시에는 세 겹의 떠남이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의 것은 매우 기발한 착상입니다.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의 떠남입니다. 과거로의 여행과 보통 사람이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 속으로의 여행. 타임머신을 타고서도 좀 어려울 거라는 생각입니다만. 배낭을 메고 시적시적 걸어 들어가고 싶은 곳은 아마도 혜원의 풍속화 혹은 단원의 풍속화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막집, 색시, 대장간'이라는 말들에서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그분들은 조선 후기 사회 서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화가들입니다. 그냥 우리네 같은 옛날 사람들을 만나서 노닥거리기도 하고 주막집 색시에게 실없는 농담도 던져보고. 그러다가 그 과거에 갇혀버리면 어쩌나. 돌아올 길을 잃어버렸을 때의 낭패감을 생각하는 걸 보면 역시 시인은 현재의 삶을 떠나지 못하는 숙명을 사는 사람에 틀림없습니다.
두 번째의 것은 오늘의 그림이라는 현실적 삶을 떠남입니다. 살기가 팍팍하고, 풀리지 않는 사람살이의 매듭에 시달리다 보면 차라리 이러한 현실을 떠나고 싶은 건 다 마찬가지겠지요. 에잇,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고 현실의 절벽 앞에서 우리는 곧잘 푸념을 합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기나 합니까. 우리는 누구나 '두드려도 발버둥쳐도' 오늘의 현실을 훌훌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달아날 '문도 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저앉을 뿐입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이 지옥 같다고 이 땅에 침을 뱉고 자녀들을 외국으로 조기 유학 보내고 이민을 간다고 해서 '나'는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모국을 잊고 낯선 이국에서 얼마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건지 내 좁은 소견으로는 떠나간 이들이 못내 처량하고 암담합니다.
세 번째의 떠남은 지구라는 별에서의 떠남입니다. 하루 한 시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지구를 떠나 밤차를 타고, 시인은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아름다운 다른 별나라를 향합니다. 그러나 그건 만화나 동화 같은 생각일 뿐 '지구를 떠남'은 곧 죽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 누구나 한두 번 그런 참담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몇 해 전 위궤양이 심할 때 새벽 세 시 무렵의 한밤에 마치 면도칼로 창자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잠자리에서 깨어 배를 붙안고 뒹굴 때, 또는 지독한 치통으로 시달리다 못해 나도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심사에 사로잡힌 적이 더러 있었습니다. 지금은 병을 벗삼아 슬슬 싸우지 않고 화해하며 사는 법을 익히는 중입니다만.
신경림 시인의 「파장(罷場)」, 「목계장터」의 구수한 시도 좋지만 세 겹의 떠남을 점층적으로 그려낸 이 시가 나는 더 좋습니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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