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정일근의 시 `감지(柑紙)의 사랑` 본문

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스크랩] 정일근의 시 `감지(柑紙)의 사랑`

오선민 2015. 4. 1. 11:47
정일근의 시 「감지(柑紙)의 사랑」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75세라던가요. 예전에 비하면 무척 길어진 셈입니다. 우리는 병 없이 오래 사는 일이라면 어느 민족보다 참 열심이라 할 것입니다. 몸에 좋은 것이라면 벌레건 짐승이건 약초건 입에 쓰고 단 것이 없습니다. 불로초를 구하려 했다는 진시황이 본다 해도 입을 쩍 벌리고 놀랄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짐승의 생체에서 피를 빨아먹는 끔찍한 일도 보신에 좋다고만 하면 가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백 년을 살려고, 천 년을 살려고? 그러면서도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나서면 죽음의 속도로 질주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원 불멸의 꿈. 아름다운 것은 그러나 얼마나 단명한 것인지. 우리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슬픔을 잘 압니다.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안타까움.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인연이나 사랑도 그럴는지 모릅니다. 목숨의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는 게 숙명적인 사람의 일이 아닐 것인지요.
향나무. 바닷가에서 자란 아름드리 둥치가 큰 향나무가 어쩌다가 해일이나 홍수로 땅속에 파묻혀 오백 년 이상 천 년 세월을 지난 뒤에 다시 지상으로 나온 것을 일러 침향(沈香)이라 한다던가요. 그 침향을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아주 먼 우리 선조들은 좋은 향나무를 골라 베어서 그 통나무를 첨벙첨벙 바닷속에 던졌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해류에 밀려 멀리 떠내려가기도 하겠지만 운 좋은 어떤 것들은 바닷속 깊이 파묻혀 뻘흙 속에서 고스란히 천 년 세월을 견뎌 마침내 침향으로 바닷가에 다시 나타나는 수가 있다 합니다. 그것은 나무로되 돌보다 무겁고 단단하며 거무튀튀한 빛깔을 띤다 합니다.
차를 즐기던 우리 옛 선인들은 차를 끓여 귀한 손님에게 권할 때 손에 밴 땀냄새를 없애기 위해 침향으로 손을 비벼 향긋한 그 향기를 찻잔에 적신 다음 공손히 받들어 손에게 권했다고 합니다. 향나무보다 더 깊고 오묘한 신비로 빚어진 천 년의 향기. 천 년의 침묵과 고절을 다스린 나무의 영혼이 간직한 향기라 할까요. 바닷가를 거닐다가 혹시 돌보다 무거운 검은 나무토막을 발견하게 되면 우선 향기를 맡아볼 일입니다. 그게 혹시 신비로운 침향일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다음과 같은 시에서 문득 그 침향이 뿜어내는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향기를 느낍니다.

비단 오백 년 종이 천 년을 증명하듯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柑紙)는 천 년을 견딘다는데
그 종이 위에 금니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詩)를 남긴다면
눈 맑은 사람아
그대 천 년 뒤에도 이 사랑 기억할 것인가
감지에 남긴 내 마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경주 남산 돌 속에 잠든 나를 깨우러 올 것인가
풍화하는 산정 억새들이 여윈 잠을 자는 가을날
통도사 서운암 성파(性坡) 스님의 감지 한 장 얻어
그리운 이름 석 자 금오산 아래 묻으면
남산 돌부처 몰래 그대를 사랑한 죄가
내 죽어 받을 사랑의 형벌이 두렵지 않네
종이가 천 년을 간다는데
사람의 사랑이 그 세월 견디지 못하랴
돌 속에 잠겨 내 그대 한 천 년 기다리지 못하랴.
―정일근 「감지(柑紙)의 사랑」

'나'라고 하는 서정적 자아는 이 시 속에서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이 어쩌면 '남산 돌부처 몰래 그대를 사랑한 것'이므로 벗어날 수 없는 죄가 되는 일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 형벌로 경주 남산 돌 속에 갇혀 잠이 듭니다. 천 년 후에 나를 찾아올 그대를 기다리며. 그대가 나를 찾으러 올 길을 행여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어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柑紙) 한 장에 사랑의 시를 남깁니다.
감지에 은니(銀泥, 은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물질.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임.)나 금니(金泥)로 간절한 사랑의 시를 박아 쓰면서 나는 내 마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서 그대가 나를 찾아 깨우러 온다면 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기다리겠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내 마음의 길을 찾아올 그대는 눈 맑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천 년 뒤의 희미한 마음의 길을 찾아올 수가 있겠습니까.
비단이 오백 년 세월을 견디고, 하찮은 감지라는 종이가 천 년을 견딘다는데 하물며 사람의 사랑이 그 비단이나 종이만 못할까보냐는 것이지요. 천 년 뒤에 다시 태어나 이어갈 사랑을 이 시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가 처연하고 구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풍화하는… 가을날'에 감지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풍화하는데 실은 사람도 예외가 아닐 테지요.
더욱이 '풍화하는'부터 '묻으면'까지의 3행이 주는 은은한 내재율의 요소가 이 시에 구슬픈 느낌을 더해줍니다. "풍화, 통도사, 성파'에서 발음되는 'ㅍ, ㅌ'의 파열음과 '산정, 억새, 통도사, 서운암, 성파, 스님, 석 자, 금오산' 등에서 발음되는 'ㅅ'음이 주는 스산한 어감이 그렇습니다. 이 밖에도 이 시에는 'ㅅ'음이 상당히 많이 나타나는 걸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 시의 소재가 된 경주 남산과 금오산에서 신라를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라 사람들이 추구하였던 영원을 시인은 이 시에서 은연중에 천 년의 사랑으로 형상화했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오래 전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도 천 년 윤회를 거친 영원한 사랑을 그려낸 것이었지요. 그러나 정작 실감으로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이 시가 지나치게 신비의 치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불교적인 윤회 사상과 신라인의 영원 추구, 전통적인 감지(柑紙)…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시인이 매우 서글픈 아름다움과 침향(沈香)의 신비를 곁들여 한국적 서정을 노래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기교를 넘어 감동으로 가기까지에는 시인의 정신이 더욱 단련되고 치열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앞으로 풀어내야 할 시인의 숙제로 보여집니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