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마술사의 밤/강인한 본문
마르크 샤갈 ㅡ푸른 스커스
마술사의 밤
강인한
귀를 팔았다
이 범람하는 어둠 속에서는 휘휘 내젓는
손이면 충분하였고
무능보다 차라리 부패를 선택한 뒤
날마다 발등을 찍고 있었으므로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귓속에서 자랐다
자라서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루고
마침내 목젖 깊은 데까지 숨어들어
칼끝처럼 찌르는 것이었으니
눈을 감는다
주춤주춤 팔을 앞으로 뻗고
발부리에 걸리는 물컹한 걸 느낀다
살짝 비켜서는 한 걸음이면
모든 게 분명해지리라
차마 참기 어려운 건 치욕보다
비열한 소문을 불어서 뇌관을 터뜨리기
벼랑 끝 허공에서 내딛는 단 한 걸음
그 순간 눈을 감았다
풍선이 터지며 극채색의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무명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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