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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고치 / 최호빈

오선민 2015. 5. 4. 09:46

고치

—줄넘기

 

   최호빈

 

 

 

손잡이를 꼭 잡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줄을 돌린다

좁은 거처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육절기처럼 밀려드는 햇빛을 같은 크기로 잘라낸다

 

이리저리 몸 깊숙한 곳을 뛰어다니던 박자가 이끄는 대로

바람을 치고

바닥을 친다

치고 또 친다

묶여 있는 개처럼 그 자리에 고정되는 소리가 울리면

어느덧 나는 시무룩한 얼굴의 소립자가 되어

매끄럽게 세상을 밀어낸다

 

위아래로 요동치는 구멍에서 한꺼번에 분비되는 질문의 새들

머릿속이 쨍쨍해지고

줄넘기는 하염없이 간절해진다

 

견고한 공중에 두 발을 올려

정지,

하면 되는데

무언가에 걸려 자꾸 튕겨져 나온다

 

누군가 손잡이를 꼭 잡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굉음을 쏟아내며

줄을 돌린다

 

떨어져 내리는 빛의 토막을 눈으로 쫓는다

 

 

 

                        —《문학.선》201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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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빈 / 1979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12년〈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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