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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베껴먹다/ 마경덕

오선민 2015. 9. 10. 14:10

 

 

 

 

베껴먹다/ 마경덕

 

 

어머니는 할머니를 베껴 먹었고 나는 어머니를 베껴 먹고 내 딸은 나를 베껴 먹는다. 태초에 아담도 하나님을 베껴 먹었다. 아담 갈비뼈에는 하와가 있고 내가 있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여자들은 하와의 사본이다. 금성 목성 토성 화성 ... 모두 지구의 유사품이다,

바람개비는 풍차를 국자는 북두칠성을, 너훈아는 나훈아를 슈퍼는 돈 한푼 내지 않고 구멍가게를 베껴 먹었다. 귤나무는 탱자나무를 오렌지는 자몽을 베껴먹고 별은 불가사리를 탁본했지만 한번도 시비에 걸린 적이 없다. 하이힐은 돼지발의 본을 떠서 완성되었다. 복숭아는 개복숭아를 표절하고 드디어 팔자를 폈다. 아직도 개복숭아인 것들은 눈치가 없거나 지능이 떨어진 것들이다.

나는 수년간 산과 바다를 베껴 먹었다. 그러므로 내 시는 위작이거나 모작이다. 나는 오늘도 늙은 어머니와 맛있는 당신을 즐겁게 베껴 먹는다.


- 시집「 글러브 중독자 」(애지,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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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솔로몬의 말도 있듯이 엄밀히 보면 완전한 독창이란 없다. ‘이것 봐, 새로운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기실 이미 있던 것의 조합이거나 변형이란 것이다. 한 화가가 소나무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독창적인 그의 그림이다. 그림이 상당한 값에 팔렸다. 그 돈은 순전히 그 화가의 몫일까? 아니다. 우선 모델이 되어준 소나무가 없었다면 그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락없이 소나무를 베껴먹은 거다. 따지고 보면 독식할 수 없는 돈이다. 그 소나무 앞에 가서 막걸리라도 한 잔 치고 올 일이다.

 

 서로 베끼고 베껴지고 베낌을 당하는 가운데 문화가 존재한다. 현재는 과거를, 미래는 현재를 본뜨기하며 역사는 발전한다. 아주 긍정적으로 베껴먹은 사례도 많다. 비행기는 새를 베껴먹었고, 음악은 새소리를 베꼈다. 그런 식으로 일일이 열거하면 시에서처럼 한도 끝도 없다.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지만 사실 창작과 모방, 인용과 표절의 구분 혹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시를 처음 배울 무렵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밤 세워 필사하면서 시를 터득했다는 시인들이 적지 않다.

  

 소설가 신경숙은 수많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필사하던 습작기를 행복하게 회상하였다. 의도적 표절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습관이 이번 표절 사태를 초래한 단초가 되지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필사를 통한 공부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좋은 작품을 베껴 쓰다가보면 문장 공부는 물론 뜻하지 않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일본제품들이 서구제품을 누르고 세계시장을 석권한 것도 단순히 제품 모방에 그치지 않고 학습과정을 거치면서 창조적인 힘을 길러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받아들여서(adopt) 모방하여(imitate) 통달해(adapt)버린 것이다.

 

 시인이 ‘수년간 산과 바다를 베껴 먹은’건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 어떤 시인은 겸손한 어투로 자연이 전하는 말을 받아쓰기했을 뿐이라고 한다. 말들은 그리해도 순수 창작행위다. 그러나 스스로의 땀과 정성을 쏟지 않고 다른 사람의 창조적 결과물을 슬쩍하는 행위까지 ‘창조적 모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호텍스트성’과 그냥 ‘모방’은 다르고 그 모방은 자칫 표절시비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최근 윤은혜의 디자인 표절 의혹도 그렇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 종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권순진

 

 

El Jinete - Pasion Vega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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