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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스크랩]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 안성덕

오선민 2015. 9. 10. 14:11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 안성덕


산신령님 이름이 뭐죠, 부음을 접하고 달려간 산악회원의 상가 영안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우린 닉넴으로 통했으니까요. 누군가 핸폰으로 산신령님의 실명을 알아냈죠. 갹출한 부의금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 접수처 청년 방명록에 서명을 부탁하더라고요. 김만수, 평소대로 써넣으려다 가만 생각해 보니 글쎄 상주가 우릴 무슨 수로 알아보겠어요. 그래요. 고심 끝에 솔낭구, 뒤이어 고갤 끄덕이던 산꼭대기님도 닉넴을 써넣습디다. 접수처 청년 표정 참 묘해지더구만요. 일행이 선녀와 나무꾼, 이라고 계속 써넣자, 딱 뭐 씹은 얼굴을 하더라니까요. 민망하긴 우리도 매한가지였지요. 화톳불이 그렇게 화끈거리는 줄 미처 몰랐다니까요. 쥐구멍에 그냥 대가리 콱 처박고 싶은데 일행 중 하나가 자꾸만 머뭇거립니다. 누군가 거듭 채근을 해대고, 마지못해 개미만한 글씨로 에헤라디아, 라고 써넣는 순간 마지막 남은 회원 글쎄 총알처럼 뛰쳐나갑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저승사자님 같이 가요.

쪽팔려 딱 죽고 싶더라고요.


- 제10회 〈시인세계〉신인작품 공모 당선 취소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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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카페 활동 경험이 있는 분은 대충 상황을 이해했으리라. 특히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닉네임으로 인한 에피소드 하나쯤은 갖고 있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후훗 웃음 짓기도 할 것이다. 감춰진 이름 뒤에 숨어서 자행되는 일부 댓글폭력 때문에 인터넷의 익명성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진즉부터 있어왔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새로운 이름 하나를 더 갖는다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자 즐거움일 수 있다. 공주가 되어보고 싶은 여성은 00공주가 되고, 어릴 때부터의 오랜 꿈인 장군 계급장도 마음만 있으면 즉각 달 수 있다. 햅번이나 핫세, 리챠드기어, 디카프리오, 로미오, 전지현, 릴케, 어우동, 황후, 심지어 강검사나 오박사로 그럴듯하게 변신하기는 뜨뜻한 죽 먹기며, 그야말로 생각대로 하면 되는 게 닉네임이다. 오래전 호기심으로 처음 참석한 인터넷 갑장 모임에서 나는 사마귀(ACT4 혹은 제4막이 그렇게 불리워졌다)가 되었고, '지루박’ ‘깡통’ ‘식은 밥’ ‘백년고독’ ‘수류탄’이라 부르며 서로 낄낄댔던 기억이 새롭다.

 

 이 시는 2007년 '시인세계' 신인작품 공모에 출품된 작품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의 희화화, 희극화로 시의 개그쇼란 새로운 영역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준 재미난 작품이라며 다른 네 작품과 함께 당선작으로 뽑혔었다. 상가 영안실에 문상하러 간 산악회 회원들의 닉네임 때문에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즐겁고 유쾌하다. 그러나 당선작 발표가 난 지 얼마 안 되어 한 독자로부터 이「저승사자를 따라가다」란 작품은 인터넷 사이트에 나도는「어느 인터넷 동호회 장례식장 얘기」의 개작 혹은 차용임을 알리는 메일이 잡지사에 전송되었다. 심사위원들은 두 문건을 검토한 결과 이 작품이 인터넷에 나도는 이야기의 차용적 개작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딱 걸렸던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 5편의 하나로 뽑은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발상의 신선함과 상황의 기발함, 시어 선택의 해학성 때문이었는데 그 연원이 기존의 공표된 언술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작품의 독창성에 중대한 손상이 가해지는 것이라 판단하여 김종해, 강은교, 이숭원 등 심사위원들은 당선 취소를 결정하고서 그 소견서에 다음의 글을 덧붙였다.

 

 "응모자는 그러한 작품은 이 한 편뿐이며 블로그에 유포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시로 재구성한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각주로 밝히지 못한 점이 실수라고 해명하였지만, 우리들은 그러한 해명이 신인상 당선작이 생명처럼 지켜야 할 독창성이 유실된 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시인이 시를 쓸 때는 이미 알려진 설화나 사건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소재를 변용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 행위다.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문법으로 새로운 정신을 열어가는 일이다. 거침없이 종횡하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언어가 난무하는 요즈음 이러한 창작의 기본 정신이 흐려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응모자의 다른 작품이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당선 취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미래의 가능성을 지닌 시인을 천거하는 일보다 창작의 정도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일로 파문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리며 이 일이 하나의 경종이 되어 다시는 이런 일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선이 취소된 본인은 물론 공모를 주관한 잡지사측도 무척 난감했을 것이다. 사실 시중에 떠도는 음담이나 유머를 재구성하여 시로 채택한 경우는 오탁번 시인의 ‘굴비’와 ‘폭설’등 흔히 있었고, 여러 시인들이 즐겨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나는 오탁번의 굴비나 폭설이 '자신의 언어와 상상력으로 소재를 변용시킨' 작품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비록 당선 취소되긴 했지만 만약 이 시가 신인 공모를 통해 선 보인 게 아니라 기성시인의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통할 수 있었으리라. 최근 신경숙 표절 파문에 이어 소설가 박민규의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인터넷 글인 '거꾸로 읽는 야구사’와 유사하다는 문제제기가 불거졌고 결국 작가 자신도 이를 인정했다. 따지고 들자면 소설에서 보다는 시에서 이런 잣대의 표절 의혹은 훨씬 광범위하고 노골적으로 유포되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소설이나 시 뿐만 아니다. 며칠 전 나와 관련있는 신문사에서 주최한 수필공모전을 심사하면서 내가 가장 유의해서 본 것은 인터넷 글 배껴쓰기의 혐의가 있는지, 그 도움이 어느 정도인지였다. 그러나 무슨 재주로 그것을 완벽히 찾아내고 온전히 가려낼 수 있으랴.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눈 시뻘겋게 뜨고 살피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들의 날마다 밥먹고 하는 일 역시 '표절'이다. 

 

 참고로 이 시를 쓴 안성덕 시인은 이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당당히 문단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첫 시집 『몸붓』을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시집에는 당시의 다른 응모작은 모두 포함되었으나 이 작품은 수록하지 않았다. 대강 훑어봐도 '몸붓'을 비롯해 시 읽기의 즐거움과 재미를 한껏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야말로 '삶의 밑바닥을 뒤지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작품들이었다. 강연호 시인은 “이 은근하고 낭만적인 정서는 아마 청춘을 흘려보낸 뒤 남게 되는 탄식과 회환에 대부분 빚지고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의 연륜이 만들어낸 깊이와 넓이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하면서 “밀란 쿤데라가 소설 ‘불멸’에서 일찍 간파했듯이,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데 있다. 안성덕의 시집 ‘몸붓’은 그 향수에 값한다”고 평했다. 나도 '당선취소작'이란 '지적질'을 하고는 있지만 시인에게 뒤늦은 위로와 축하를 보낸다. 독자의 판단을 위해 인터넷에 유포된 바로 그 ‘인터넷 동호회 장례식장 얘기’란 글을 붙인다.

 

 ‘인터넷 시대에 반드시 따라 다니는 새로운 문화 바로 닉네임입니다. 이제는 이름만큼 중요한 식별도구로 쓰입니다. 누군가 호칭을 할 때도 닉네임을 부르는 일이 더 많아 진 것 같습니다. 내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와 동호회도 마찬가지였지요. 얼마 전, 내가 자주 가는 동호회의 회원 한 분이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엔 자주 안 나가지만 조문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면식 있는 회원에게 연락하고 장례식장 앞에서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영안실을 찾다가 상당히 난처한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산꼭대기님 원래 이름이 뭐야?" "........?" 그렇습니다. 달랑 닉네임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영안실은 실명으로 표시 되어 있어 초상집을 찾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해서야 이름을 알게 되었고 빈소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조금은 따로 걷어서 봉투에 담았는데, 안내를 맡은 청년이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 달라고 부탁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댓명이 와서 머뭇거리다 그냥 가면 더 이상하게 생각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어 이름을 적으려다 보니 평범하게 이순신 홍길동 변학도 등으로 쓰면, 상주인 회원이 나중에 어떻게 알겠습니까? 늘 부르던 호칭으로 적어야 누가 다녀갔는지 알겠지요. 그래서 자신 있게 닉네임으로 썼습니다. "감자양" 뒤에 있는 회원도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닉네임을 썼습니다. "아무개" 이 회원의 닉네임은 아무개입니다. 데스크에서 안내를 하던 젊은 청년이 난감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다른 회원도 닉네임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회원의 닉네임은 거북이 왕자였습니다. 안내를 하던 청년은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민망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우리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아직 이름을 적지 못한, 뒤에 있는 회원분을 다그쳐, 빨리 쓰라했더니 이 회원은 계속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회원의 닉네임은 "에헤라디야" 였습니다. 빨리 쓰라고 다그쳤지만 차마 펜을 들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아! 빨리 쓰고 갑시다. 쪽 팔려 죽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에헤라디야"라고 쓰겠습니까? 그래도 얼른 가자니까! 결국 "에헤라디"야 회원님은 다른 회원들보다 작은 글씨로 조그맣게 "에헤라디야" 라고 썼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회원이 자리를 박차고 영안실을 뛰쳐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얼른 자리를 벗어나야겠단 생각에 모두 큰소리로 "저승사자님, 어디가세요“ 하고 그를 불렀습니다. “............." 아~흐...이런 실수를~ ~ ~주변이 썰렁해졌습니다. 결국 우리는 고개를 숙이며 장례식장을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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