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천사가 된 마네킹/ 박장호 본문
천사가 된 마네킹
박장호
어제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멋진 것을 찾았다.
나는 남자도 될 수도 있고 여자도 될 수도 있다.
우리 중에 심벌을 가진 신체는 없다.
어제는 뿌리도 없는 주제에 남자 가발을 썼다.
어이 잃은 큐피드가 활 대신 기타를 줬다.
노래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365일이 핼러윈이었던 거다.
사탕에 미친 귀신들은
더 무서워지는 방법만 연구했다.
유령 나라에 전시된 나는
올라선 후에 무너지는 장벽을 보는 기분으로
입혀진 뒤에 당하는 강간 같은 기분으로
총족의 현실을 노래했다.
귀먹은 귀신들에게 노래가 무슨 소용인가.
귀신들이 노래를 가로막고 공포를 퍼부었다.
빨릴 대로 빨려 피가 마른 나의 분노는
1센티도 발기하지 않았다.
판판한 사타구니로 분노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제의 나는 아름답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멋진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옷은 입혀진 것이었고 가발은 씌워진 것이었다.
그래도 가슴은 있었다.
적어도 여자 옷과 가발이 합당했다.
생각을 노래한 대가로 공포가 내 몸을 절단했다.
경계가 없던 신체의 허리가 끊어졌다.
상체와 하체의 간격이 차가웠던 시대의 장벽 같았다.
나는 남자도 될 수 없었고 여자도 될 수 없었다.
나는 생각한 대로 살 수 없었다.
귀신들은 사탕뿐만 아니라 생각의 고요까지 원했다.
365일 중 단 하루도 진짜 핼러윈이 아니었다.
오늘은 딴생각을 한다.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에 반(反)하는 것이 귀신들의 생존 방식이다.
귀신들이 부서진 내 살점을 헤집으며 사라진 생각을 찾는다.
딴생각은 미끌미끌하다.
딴생각은 추월당하지 않는다.
딴생각은 가로막히지 않는다.
딴생각은 부서지지 않는다.
딴생각으로 결합된 오늘의 여자가
생각 때문에 부서진 어제의 남자를 안는다.
갓난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말도 모르면서 딴생각을 하는 것 같다.
—《딩아돌하》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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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 / 1975년 서울 출생. 2003년 《시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나는 맛있다』『포유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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