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매화 / 정호승 본문
☛ 경상매일/ 2015.2.4(수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매화
정호승
도산 선생 임종하신 방 한 구석에
매화분 하나 놓여 있다
매화분에 물 주거라
도산 선생 돌아가실 때 남기신 마지막 말씀
소중히 받들기 위해
매화분에 매화는 피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통장에 돈 찾아라
한 마디 남기고 죽을까 두려워라
낙동강 건너 지구에는
오늘도 한창 꽃이 피고 있다
도산서원 매화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꽃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은 나를 보고
죽더라도 겨울 흰 눈 속에 핀
매화향기에 가서 죽어라고
새들은 자꾸 속삭인다
◆시 읽기◆
매화는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격조 있는 꽃이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는 기품과 고결한 자태는 학식과 덕행이 높은 군자의 절개, 지조를 상징한다.
추위 속에서 오히려 맑은 향을 주위에 퍼뜨리는 모습에서 외세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불의에 물들지 않으려는 선비의 기질을 비유했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이라하여, 결코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올곧은 선비는 지조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는 청빈한 선비를 비유했다.
대한제국의 개혁, 계몽 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임종하신 방 한 구석 매화분에 핀 꽃에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는 말을 남긴 도산선생의 생과 유지가 깃들어 있고,
한국 유학(儒學)을 대표하는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만든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의 매화에도 학식과 덕행이 높은 군자의 절개, 지조가 깃들어 있다.
시인은 활짝 핀 매화를 보며 “통장에 돈 찾아라” 한 마디 남기고 죽을까 두렵다고 말한다. 기품 있는 군자가 그리운 현실, 물질문명에 꺼들린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옛 시에서 흔히 절사(節士) 정인(情人) 춘정(春情)과 봄의 전령으로 상징된 매화, 그중에도 눈 속에 핀 매화처럼 고결한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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