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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스크랩] 시인들이 말하는 우리 시단의 문제

오선민 2017. 5. 8. 09:42

시인들이 말하는 우리 시단의 문제(抄)

    —《문예바다》'창간 1주년 특집 설문조사'에서

 

 

 

   계간 《문예바다》에서 창간 1주년을 맞아 시인들에게 ‘현대시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큰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에 모두 85명의 시인들이 참여했다. 시적 리터러시(literacy)와 창의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는 생략한다. 다만 시를 읽거나 직접 시를 쓰는 일 등이 모두 창의성과 상상력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많았음을 밝힌다.

   한 가지 현대시의 실용적 기능 중 창의력 개발과 관련하여 현대시에서 강조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절반 가까운 시인들이 독자와 소통 강화를 최우선으로 꼽았다(46%). 그만큼 현대시가 독자와의 소통을 소홀히 하거나 의도적으로 멀리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복수 응답이 가능했던 관계로 소통성의 문제를 지적한 시인들은 이를 위해 시적 진정성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32%). 진정성을 토대로 한 독자의 공감이야말로 소통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손꼽힌 내용은 새로운 시적 표현의 개발이었다(36%). 이 대답은 모든 시들이 새로운 시적 표현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히 당연한 항목일 수 있는데, 응답자의 상당수가 창의력 개발과 연관시켜 대답한 결과로 풀이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뉴미디어와의 결합(14%)과 문학교육 쇄신(4%)이었다. 시가 아무리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 수준 이하의 작품들

 

• 예술을 빙자하여 말장난 같은 시들이 난무한다. 말꼬리 잡기 놀이처럼 단지 언어유희에만 그치는 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 시인 자신도 모르는 시적 의미, 부분과 전체, 앞과 뒤가 맥락에 닿지 않는 시적 전개 등이다.

• 시인도 많고 시를 가르치는 곳도 많다. 시인이 많아진 것은 문제가 아닌데 비슷비슷한 시들이 많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개성 없는 예술이 존재하는가?

• 자기 성찰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사라지고 있어서 시가 가벼워지고 있다. 이를테면 언어유희뿐인 시, 현실의 기반 없이 저 홀로 공중부양한 시, 표피적 상상력이 전부인 시, 관심 끌기용 성적 표현 등으로 우리 시가 흘러간다.

• 시의 산문화는 심각한 문제이다. 감정과 정서가 절제되지 않고 그저 쏟아내기에 급급하다. 미학과 철학이 겸비된 아름다운 서정시들이 그립다.

 

2. 본업을 망각한 시인들

 

• 감성적인 시를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시인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때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몰매를 맞더라도 자신의 시적 진정성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시가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라거나 드레스는 아니다. 삼베옷을 입고 산 속에 묻힐망정 누구 앞에서라도 정직해야 한다.

• 시인들이 감성의 허영, 표현의 허영에 빠져 있다. 쓸데없이 감정을 낭비한다. 그것도 거품이다.

• 시인은 많은데 시인들이 시집을 읽지 않는다. 그게 가장 큰 문제이다.

• 시적 진정성은 조금도 없고 포장만 그럴듯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시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창조냐고. 예술 본래의 긴장을 잃고 기형만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시인들 스스로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그걸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꼴불견이며, 사회적 에너지의 낭비이다. 요즘 시는 완전히 무척추의 변태 같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비능률적인 창작을 일삼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3. 소통 불능의 자폐성

 

• 시인도 많고 시도 많은데 독자는 없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시인들만 시를 읽는다. 아니, 시인들조차 시를 읽지 않는다.

• 시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 평론가도 어물거리는 시, 일반 독자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난해한 시는 왜 쓰는 것일까? 왜 발표하는지 모르겠다.

• 오늘의 현대시가 독자와의 소통을 지나치게 부정하면서 그 입지를 스스로 위축시키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시와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시의 음악적 요소나 포에지의 획득을 위한 세련된 미학적 탐구가 좀 더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

• 난해하고 모호한 시를 세련되고 모던한 시라고 시인들이 착각하는 것 같다. 부분적인 속성을 전체로 오해한 결과이다. 독자들이 난해하게 느낄수록 시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는 황당무계한 시들을 쓴다.

• 독자가 없는 시는 존재 의미가 없다. 현대시가 지나치게 난해한 경향을 띠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오랫동안 시를 써 온 분들에게 그런 시를 보여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시가 꼭 쉬워야 된다거나 교육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풍조는 시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4. 사회적 긴장감이 없다

 

• 시가 구체적 삶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어적 측면과 상상력이 시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들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아주 기형적이고 지나치게 현학적인 시가 될 것이다.

• 대체로 젊은 시인들의 체험이 너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삶보다는 소화되지 않은 관념을 동원하여, 시를 어떤 ‘공식’에 의거하여 ‘제작’하는 듯하다.

• 요즘 시들은 지나치게 쾌락적 기능에 치우쳐 있다. 현란하기만 한 시들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성정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실험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읽고 나면 기분이 나쁠 정도로 혐오스러운 변태적 글쓰기는 지양돼야 한다.

• 얼마 전 어느 신인문학상 응모에 '세월호' 관련 시가 단 한 편도 응모되지 않았다는 심사평을 본 적이 있다. 시적 기능이 반드시 공리적 기능에 부합해야 한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나, 시인은 당대에 앞서 세계를 통찰하고, 나아가 당대의 문제를 제기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자라는 고래의 관점을 고려하면, 이는 현재 우리 시단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적 현상이라 생각한다.

 

5. 시단의 타락, 패거리주의

 

•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시인’ 자격증을 남발한다. 심지어 등단을 사고팔기도 한다는 소문이다.

• 미래파 시와 관련, 그들의 시적 성취는 과연 어떠했는지, 파급 효과는 어떠했는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하나의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 시단에 표절 시비 내지 대리 창작의 추문도 비일비재하다.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안타깝다. 심지어 시집 한 권에서 반 이상, 또는 거의 한 권 분량의 시들이 본인의 창작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소정의 보수를 받고 첨삭 수준의 퇴고를 넘어 거의 대필해 주다시피 하는 사람도, 그것을 제 것인 양 받아들이는 사람도 양심의 타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패거리 문단, 문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패거리 문단의 문제점은 작품이 썩 좋지 않은데도 학맥, 인맥에 따라 여러 평론가와 시인을 동원하여 특정 시인을 띄우고 그들의 이익을 취한다. 출판사와 비평가와 시인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상업성을 추구한 결과 독자와의 소통은 점점 멀어져 간다.

 

6. 게으르고 편협하고 무능한 비평가

 

•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평론가들의 책임이 크다. 요즘 평론가들은 출판사의 입장도 고려하고 시인의 눈치도 본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이다. 시인 스스로도 모르고 쓴 시를 온갖 잡다한 이론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는 평론가가 유능한 것처럼 착각한다. 뻔히 보이는 그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 감동을 주는 시들을 평론가들이 많이 소개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문제작이라고 일컫는 시들은 주로 실험시들이다. 그러니까 시인들이나 독자들은 그런 시가 좋은 시로 착각하여 비슷한 시가 계속 양산되는 악순환을 겪는다.

• 현재 우리 시단은 도덕적 기능보다 예술적 기능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평론가들의 시에 대한 비평은 물론이거니와 신인상, 문학상 등의 심사에서도 이런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시인 지망생이나 수상 후보들은 당선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잡음도 기꺼이 감수한다. 결국 쾌락적 기능에 편중된 현재의 시적 경향이 우리 시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 시인과 독자를 성실히 중개해야 하는 평론가들이 오히려 시를 더 어렵게 해석하여 독자들의 시 읽기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그들만의 표현 방법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바꿔 나가자

 

 

1. 시인됨에 충실하자

 

• 자기만족에 빠져 시의 사회적 기능을 외면하고 예술적 기능, 쾌락적 기능에만 집착한다면 독자들은 시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현대의 독자들은 시인들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훨씬 뛰어나다. 시인들은 모름지기 겸손한 자세로 시작에 임해야 한다. 독자를 만만히 보다가는 독자들로부터 조롱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 시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시인의 기본적 토대의 강화가 필요하다. 시적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야 한다.

• 문장은 기본적인 문법에 충실해야 하고, 생각은 소박하고 조촐해야 하며, 표현은 세련되지만 야하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속됨’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 무엇보다 ‘머리 굴려’ 쓰는 시, ‘책상머리’에서 짜깁기하고 편집한 시가 아니라 어떤 체험이든 현장의 피가 묻어 있어야 하리라.

•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영달과 입지, 노선을 구축하기 위해 시를 도구로 쓰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시인을 떠나 사업가나 교육자나 정치가가 되어야 한다. 그 삶에서 시가 우선이고 시 자체가 삶의 전부라 여기는 탐미적이고 무목적적인 시인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2. 독자와 소통하는 시를 쓰자

 

• 소통의 문제가 현대시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시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단 전체의 문제라고 본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시대, 자기의 생존이 우선인 시대에, 보다 큰 차원에서 시를 써야 한다. 그런 세상을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 말이다.

• 균형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한 실험적인 시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좋은 시가 아닐까.

• 일반 독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독자 없는 시집, 난해한 시의 세계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시를 짓고 첨단을 걷는 시인 척, 앞서 가는 시인인 척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실험시가 시단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섣부른 그것이 주류가 되면 혼란과 부작용이 크다.

• 독자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현대시는 독자와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시적 허용을 빙자한 언어 파괴, 비평을 위한 비평이 난무하는 시단의 모습은 과히 좋지 않다.

•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시는 이미 죽은 시다. 암호 같은 시는 제발 지양하자. 자폐적인 시를 쓰는 것은 자유지만, 지면에 발표하여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독자를 현혹하는 일은 제발 삼가는 게 좋겠다.

 

3. 비평가의 ‘돌직구’를 기대한다

 

•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평론가들이 현재의 시단을, 신인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향력 아래 편성하고자 하는 기도가 상당히 먹혀들고 있다. 그로 인하여 시단의 무명 신인들조차 무의미하고 무조건적인 아방가르드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태도들은 불식돼야 한다. 이를 위해 문학상이나 신인을 선발하는 심사위원 구성에서 비평가를 제외하는 것도 한 방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시를 비평하는 이들은 시 평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기본적으로 시 평론은 ‘시 감상 도우미’로서 독자와 시인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이며, 이 과정에서 가치 평가가 개입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의 미적 취향이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몰각하고 있다.

• 문학적 성과가 평론가들의 현학적 평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 시인의 역량이나 작품 수준이 아니라 등단지에 따른 편견과 선입견, 인맥, 학맥 등에 좌우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 좋은 시는 좋다고 하고, 나쁜 시는 나쁘다고 말하는 비평가의 ‘돌직구’가 필요하다. 대가나 유명 시인의 태작이 단지 과거의 명망에 힘입어 상찬되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 현재의 시단에 시가 아니라 자폐적인 일기를 운문 형태로 쓰거나 외국 기행문에 불과한 산문일 뿐인, 나쁜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4. 부분보다 전체를 생각하자

 

• 쾌락이 지나치면 우리 시는 폐허가 될 수밖에 없다. 공리적 기능이 지나치게 강해도 시는 어떤 수단에 끌려가는 도구의 역할을 면치 못한다. 언어 예술적 기능과 도덕적 기능이 상호 보완관계로서 균형을 가질 때 새로운 시의 진보, 발전이 찾아올 것이다.

• 진정한 시인이라면 당연히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 성찰하고 실천해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부정과 회피보다는 좀 더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자세와 노력 속에서 시인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한층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5. 문단의 반성,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 우리 문단이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는 부정과 부패, 각종 부조리에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문예지 발행인과 편집인들의 반성이 우선되어야 우리 문단이 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 신인상, 문학상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온갖 비리가 개입돼 있는 만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 문예지에서 시를 청탁할 때, 문학 권력을 많이 누린 사람보다는 좋은 시를 쓴 시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하고 그런 시인들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 문예지에서 시를 청탁할 때 전통적인 서정시와 실험시, 전위시 등의 적절한 배분을 고려했으면 한다.

• 현대 사회에서 시가 지닌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현대의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시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 시 작품이 다양한 인접 장르나 사회적 콘텐츠와 결합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시의 프리즘을 확산시켜야 한다.

• 일반 독자들이 시의 현대적 감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문학 교육 자체를 쇄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시 교육을 위한 초중고 시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문학 교육을 강화하고 일반인을 위한 문학 강좌도 활발히 개설해야 한다. 또한 독자들이 시를 자유롭게 읽고 감상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상설화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예바다》2014년 겨울호

 

* 이 글은《문예바다》창간1주년 특집 설문조사 '특집1 / 시적 리터러시(literacy)와 창의성'과 '특집2 / 시인들이 말하는 우리 시(시단)의 문제'(311쪽~341쪽)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옮기고, 문맥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구절은 첨삭이 가해지기도 했음을 밝힙니다. _ 옮긴이.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양승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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