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오늘 / 박건호 본문
오늘 / 박건호
어느 날
나는 낡은 편지를 발견한다
눈에 익은 글씨 사이로
낙엽 같은 세월이 떨어져 갔다
떨어져 가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
세월은 차라리 가지 않는 것
모습을 남겨둔 채 사랑이 갔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추억은
한 잔의 커피를 냉각시킨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은 따스한 것을
저만큼의 거리에서
그대 홀로 찬비에 젖어간다
무엇이 외로운가
어차피 모든 것은 떠나고
떠남 속에서 찾아드는
또 하나의 낭만을
나는 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이미 떠나버린 그대의 발자국을 따라
눈물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발견한 낡은 편지 속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듯
그대를 보게 된다
아득한 위치에서
바라다보이는 그대는
옛날보다 더욱 선명하다
그 선명한 모습에서
그대는 자꾸 달라져 간다
달라지는 것은 영원한 것
영원한 것은 달라지는 것
뜨겁고 차가운 시간과 시간 사이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공식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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