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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김부식에게/강인한

오선민 2010. 5. 13. 07:50

김부식에게/강인한
- 아아 역사여·2





눈 내리는 밤을 마주하여 그대를 생각한다.
김부식(金富軾)
그대의 붓 한 자루가 지워버린
대륙의 함성을 오늘 다시 생각한다.
그대가 물려준 단벌 옷을 벗어들고
아득히 귀기울여보면
저 눈 속을 떠나는 고려 사신들
꾸부린 행렬 위로 겨울 까마귀 낮게 날고
인삼이며 비단을 바리바리 싣고서
북쪽을 향해 눈보라 속으로 멀어지는 말 발자국.
그대는 그것들을
역사의 빛인 양 낱낱이 적고 있었구나.
조공을 바치러 가는
작아서 슬픈 나라의 애잔한 말방울 소리,
그대의 귓전을 홀연히 밝혔으리니.
김부식(金富軾)
날리는 눈발 속에 그대를 생각한다.
치욕의 잔은 이 밤까지 흘러와 넉넉한데
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대륙의 수십만 오랑캐를 베고 또 베는 백제 장군과
장군들을 부르는 왕의 큰 목소리
그대에겐 차마 들리지 않았음인가.
귀먹고 망령든 그대의 집 장독대에도
잃어버린 대륙의 눈은 쌓이고
간장 항아리를 덮을 마련으로
그대는 흐려진 눈을 비벼보는 것인가.
싸우지 않고서 스스로 쭈그러드는구나**
고향을 빼앗긴 유민들 피 묻은 한숨
퍼붓는 눈발 속에 점점이
섞이기도 하는 것을,
김부식(金富軾)
어둡고 찬 밤하늘을 향해
작아서 진정 부끄러운 그대의 이름을
가만히 배앝아 본다.





* 중국 {남제서} 백제전에 보이는 동성왕 때의 백제 장군들. 사법명 등이 동성왕의 명을 받아 위나라 기병 수십만을 물리쳤다고 전해지는데, 이에 의하면 백제가 중국 대륙 깊숙이 진출했었다는 증거가 됨.
** 연암 박지원이 연경을 돌아보며 잊혀져 매몰되는 우리의 고대사를 돌이켜 탄식한 말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서봉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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