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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비어록(蜚語綠)/강인한

오선민 2010. 5. 13. 07:50

비어록(蜚語綠)/강인한
- 아아 역사여·3





백성들이여, 짐의 백성들이여
그대들 대대손손의 쓰라린 눈물을 건지기 위하여
그대들 식솔들의 주림과 헐벗음을 낱낱이 덜기 위하여
홀로 만 근의 어둠에 시달리며
그대들이 볼 수 없는 외로운 북쪽에서
저 소금 덩어리 같은 큰 별과는 가장 가까운 자리
그곳에 짐의 잠이 쓸쓸히 빛나느니.

내전에 숨어들어
늙은 홰나무 가지 자욱히 개구리 울음을
달빛에 풀어놓은 자, 누구냐
굳게 잠긴 빗장을 살며시 열고
음험한 비어(蜚語)에 혀를 적시는 자, 누구냐
가위눌리는 악몽에 밤마다 참여하는 너희들.

백 날 동안의 털투성이 장마 비를
부덕한 짐의 소행으로 굳이 고집하고
인제는 또 무엇을 획책하려는 것이냐.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하늘까지 사무쳐 있는 그대들의 어리석음이여.
다스리는 짐의 홀(笏)은 떨리인다.

말하노니
짐이 정하고, 짐이 행하리로다.
새 한 마리 함부로 허공에 날리지 말 것이며
벗어남을 결코 저지르지 말지니,
이 나라 육백 년 사직을 흔드는 자
단칼에 베어 그 머리를 창검에 높이 꽂아
길들인 매로 하여 살점을 뜯기게 하리로다.
눈 있는 자 보고
귀 있는 자 들으라.

그러나 백성들이여, 짐의 백성들이여
그대들 누란의 어리석음을 벗기기 위하여
북쪽에서 홀로 빛나는 짐의 잠을 보아라.
하늘에서 땅 끝까지
때로는 만 리 바닷속까지 맷돌을 달고 떠돌며
헤매는 짐의 꿈을.


* 개구리 울음, 음험한 비어, 장마 비 등은 {삼국유사} 제1권 태종춘추공편 백제의 멸망에서 인용.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서봉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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