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유진의 시읽기> 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 이종암 본문

좋은 시 감상

[스크랩] <유진의 시읽기> 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 이종암

오선민 2010. 5. 24. 11:35

☛ 서울일보/ 2010.5.21(금요일)자

 

 

                 詩가 있는 풍경

 

 

 

홍매도 부처 연두도 부처

                                 이종암

 

 

황사 심하던 어저께 통도사에 갔다

 

마음과 몸뚱어리

모래먼지 뒤덮인 허공만 같아

대웅전에 줄곧 엎디어 울었다

속울음 실컷 울고 나니

내 허물 조금 보이는 것만 같다

 

금강계단 뒤돌아 나오다 본

홍매 한 그루

허공의 황사 밀어내며 막 눈뜨는

홍매화가 나를 꾸짖는다.

암아, 암아 세상 살면서

제대로 된 몸꽃 하나 가져라

 

산문을 나오며 바라 본 먼 산이

겨울빛 지워내며 조금씩 올라오는

연두가 또 회초리를 든다

 

 

시 읽기

황사는 편서풍에 의하여 하늘 높이 불어 올라간 미세한 모래먼지가 대기

중에 퍼져서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 또는 떨어지는 모래

흙을 말한다. 과도한 가축의 방목에 따른 목초지 감소와 지구온난화의 영

향으로 발원지의 사막화가 가속되고 눈이나 비가 적게 내리면 황사는 더욱

심해진다.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도 적절한 씻김이 있어야 맑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사가 심한 봄날, 마음의 바람, 마음의 황사가 심했던 것일까. 시인은 통

도사 대웅전에 줄곧 엎디어 속울음을 실컷 울었다. 심한 비가 쏟아지고 마

음의 황사가 씻겨 내려가니 내 허물이 조금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

고 금강계단을 뒤돌아 나오다 본 홍매 한 그루 황사가 불든 말든 아랑곳하

지 않고 꽃눈을 틔우는 것을 보았고, 산문을 나오며 바라 본 먼 산 연두의

초목들이 겨울빛 지워내고 있음을 보았다.

시인은 자연에 순응하며 본래적 삶을 영위하는 자연이 시인의 마음을 꾸짖

는 회초리를 들고 있다고 말한다. 황사 심한 봄에도 순리에 순응하며 제 삶을 꽃피우는 홍매도 연두도 부처라고 말한다.

‘암아, 암아 세상 살면서 / 제대로 된 몸꽃 하나 가져라’

이는 모래먼지 뒤덮인 세상, 허공처럼 무한한 세상에 사람다운 사람의 삶

을 위해 사념과 갈등을 다스리는 시인의 구도적 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범부가 곧 부처를 만드는 재료‘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본래 결함없는

지혜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

하는 것은 아닐까? 애초에 소유욕으로 비롯된 인간의 갈등은 자신이 다스려야 한다.

순리와 순응의 진정한 생명성, 확고한 자존감, 원숙한 자아완성에 도달하

기위해 우리는 늘 씻고 씻김을 반복하는 것이리라.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출처 : 유진의 삶을 시처럼 시를 삶처럼
글쓴이 : 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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