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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창작강의 및 문학이론

[스크랩] 시의 초심닦기(12) - 위선환

오선민 2010. 6. 9. 00:49

ㅇ 물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의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 전문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소에게 무슨 '발잔등'이 있단 말일까. 이것은 語法의 오류가 시의 문맥에서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척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잔등'은 '등'의 낮춤말이다. '등'은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에서 뒤쪽이나 뒤로 향한 쪽, 곧 가슴이나 배의 반대쪽'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소 발잔등'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물건의 반대쪽이나 바닥의 반대쪽도 '등'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억지로 말한다면 '소 발잔등'이라는 말도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의 언어는 가장 섬세하게 교직되어야지 대충 그럴싸하게 어리설기 짜는 게 아니다. 발굽이 있는 소와 말에 발잔등이 있다는 말은 우리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문학의 문학' 봄호에서 이숭원이 나의 작품 '두레반'을 평한 것을 읽었다. 내 시에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를 사전을 찾아가면서 자세히 읽은 것을 보고 참으로 놀랐다. 몽둥이로 잠자리 잡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거미줄 포충망으로 정성스레 시를 해석하는 이러한 태도는 정말 값지다. '햇좁쌀'이라고 해야 맞는 것을 '햅좁쌀'로 잘못 표기한 것을 바로잡아 준 것을 보면 정말 그렇다.

- 오탁번 / <현대시학> 2008년 4월호


ㅇ 일례를 들어 말하자면, 미당 선생의 경우도 '동천'까지만 시가 좋지. 거기까지가 미당 선생 시의 정수라고 할 수 있고 나머지 '질마재 신화'부터 몇 백 편의 시는 모두 비슷비슷하고 긴장이 없잖어. 김춘수의 경우도 그렇고, 김춘수 선생도 '타령조' '처용단장' 거기까지고 나중에 쓴 시들은 좀 의심스러운 데게 없지 않아 있어. 그러면 시 쓰지 말아야지. 몰라 나는 금년 말쯤 해서 시집 하나 더 엮으려고 하는데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왜냐하면 나이 때문에 자꾸 집중력도 떨어지고 지구력도 자꾸 감퇴하고 그래. 그러니까 작품 하나 만드는데 예전엔 빨릴 만들 때는 일주일 정도 아니면 평소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경우는 삼사 일이면 쓸 수 있었고 그랬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한 달 내지 빠르면 열흘 정도 되새기고 되새기고 해야 겨우 하나 만들고 그러는데 뭘. 그래서 시집 낼 때까지만 작품을 쓰고,.....

홍신선 / 문학.선 2008년 봄호 / 특집대담 부분


ㅇ 시를 가르치는 건 불가능하다. 누룩에게 술이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술이 그러하듯 시는 때가 무르익으면 몸 안에서 스스로 숙성한다. 우리가 시에 관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시와 시 아닌 것의 구별, 시쓰기에서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시행착오와 오류들에 관한 것, 진짜 시인의 시와 가짜 시인의 시를 감별하는 방법 따위다.

- 장석주 / <시인시각> 2008년 봄호


ㅇ ...., 그러나 자연 또한 완벽하지 못하다. 동양사상에서는 자연을 완벽한 것, 원래부터 존재해 왔던 것, 신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 역시 하나의 종교적 가설, 허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은 매우 이기적인 것이다. 결코 성스럽지 못하다. 인간이 모방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 정말이지 부족한 인간과 불완전한 자연 전체를 통합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줄 초월적 "중심"이 필요한 때이다.

- 최서림 / <시와 정신> 2008. 봄호


ㅇ 우리가 읽은 시집과 시편들의 동향은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시의 이념(주제)보다는 방법(미학)이 개개 시편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는 한편으로 미학주의의 과잉을 경계해야 할 정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둘째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퇴조가 현저하게 일반화되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는 구체적 사회 현실을 시적 제재로 하여 서정시의 현실 연관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급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는 여전히 ‘생태 시학’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주류 미학이 수적으로는 가장 우위에 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계몽적 의지가 반영되고 있는 사례라 할 것이다.

-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중에서


ㅇ 문장의 맛이란 무엇인가? 거창하지 않다. 한 마디로 ‘바른 문장’에서 나오는 감칠맛이다. 요리 굴리고 조리 굴려 보아도 뒤틀리거나 어그러지지 않는 반듯한 문장은 얕은맛이 난다. 진하지도 심심하지도 않고, 짐짐하거나 텁지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요란스럽거나 중뿔나지도 않은 부드러운 맛이 얕은맛이다.
입맛 다셔지는 바른 문장 만나기가 쉽지 않다. 입맛이 다셔지기는커녕 메마른 낱말들만 무 밑동같이 제각기 싸돌아다니기가 일쑤이고, 심하게는 대가리가 뭉텅 잘려나가서 이거 무슨 잠꼬대인가 싶은 문장도 있고, 더러는 목적어를 놓친 서술만이 쌀개 부러진 방아허리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허둥대기도 한다. 심지어는 낱말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꼴이 된 경우도 부지기수다.
몇 해 전, 이름난 한 문학상의 심사위원 한 사람은 그해의 수상작을 두고 ‘끌로 바위를 쪼는 듯한 눈부신 묘사’라는 극찬을 퍼부은 적이 있다(실은 ‘바위를 쪼는’ 것은 ‘끌’이 아니라 ‘정’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수상작의 첫대목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러했다.

여자는 콩깍지를 까고 있다. 깍지를 비틀 때면 벌어진 껍질 사이로 얼룩무늬의 강낭콩알들이 나란히 나타난다.

‘콩깍지를 까다’니? 빈 껍데기를 왜 깐단 말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여문 콩을 다 털어낸 빈 껍데기’가 ‘콩깍지’라는 사실을 모르고 저지를 헤프닝이다. 과연 눈부신가?

권오운/ '우리말 소반다듬이' 중에서/ 문학수첩 2008년 봄호.



모자란 채 흘러가야 하는
그러나 끝까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을
내 푸른 사상,

- '모자란남움직씨' 부분

쉼표로 처리되어 그 지속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푸른 사상'은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생각의 흐름을 의미한다. 언어는 사유의 본원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하지만 멈춤 없이 그것을 좇아간다. 늘 진행중인 움직임이기에 '푸른'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이혜원 / 우대식 시집 '단검' 해설문 '한 낭만주의자의 겨울 노래'중에서


ㅇ 조선일보 / 1997년 3월 13일 자

"프랑스 『엘르』 前편집장 보비ㅡ뇌졸중 극복한 집필의지"


‘장 도미니크 보비’. 프랑스 여성잡지 『엘르』 前편집장. 44세. 심장마비로 9일 사망.

지금 프랑스인들은 이 젊은 지식인의 죽음 앞에 최대한의 존경과 애도를 보내고 있다. 그는 죽기 직전 1백30쪽짜리 책을 한 권 썼다. 제목은 ‘잠수종과 나비’. 길지 않은 그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화들을 풍자와 유머로 묘사한 책이라 한다.

병상에서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부어 쓴 이 책은, 지난주 프랑스의 모든 서점에 일제히 깔렸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감동하는 부분은 책의 내용이 아니다. 책을 쓴 방법이다. 아니, ‘쓴’ 게 아니라, 그저 ‘눈꺼풀을 깜박거린’ 것이다.

프랑스의 여성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있던 95년 12월, 그는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병원측은 그의 뇌와 신체를 잇는 신경망이 끊어졌다고 진단했다. 이때부터 보비는 말을 할 수도, 무엇을 먹을 수도, 심지어 혼자 힘으로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뇌 이외에 살아 있는 신경망은 오직 한 군데,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그에게 책을 써볼 것을 제안한 사람은 전에 그의 편지를 받아보았던 『엘르』의 편집인 안토닌 오두아르氏 등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눈을 깜박임으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본뜰 것을 제안했다”고 오두아르씨는 말했다.

의사소통 방법이 고안됐다. 프랑스어의 각 알파벳을, 눈 깜빡거리는 횟수로 표시하기로 했다. E나 S 같은 자주 사용하는 문자는 가능하면 눈을 적게 깜빡거리도록 순서를 재배열했다. 마침표는 ‘눈을 아예 감아버리는 것’으로 약속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써나간 글은 하루에 책 반쪽 정도. 1년 3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거려야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은 ‘내 삶 속의 어느 하루’. 비틀즈의 노래에서 따온 이 마지막 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하루 전의 생활을 묘사한 것.

그리고 ‘행복하게도’ 그는 영영 눈을 감기 전 ‘자기만의 필법으로 쓴’ 자신의 책을 그의 소중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교훈은 말의 가치이다. 우리에게 오직 말밖에 남지 않았을 때, 모든 단어 하나하나는 진실로 소중하게 된다.”

오두아르씨는 “보비가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는 훨씬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며 “그 책은 그의 존재 이유였다”고 말했다.

책 제목 ‘잠수종과 나비’는 병상의 그를 그대로 묘사한 것. 몸은 비록 꼭 끼는 잠수복 속에 갇혀 있지만, 마음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려는 그의 꿈이 담겨 있다. 프랑스 TV는 오는 14일 그의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마지막 삶을 방송할 예정이다.

<池海範 기자>




ㅇ 고은은 개작하기로 유명한 시인이다. 일단 발표한 시를 시집으로 묶을 때는 어김없이 개작을 시도한다. 그는 두 번 전집을 출간했는데, 1983년 민음사 전집(2권)과 2002년 민영사 전집(38권)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거의 모든 시들이 개작되었다, 고은의 개작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작은 개작당시의 정황이 고려될 수 밖에 없으므로 원본의 의미를 훼손한 것이기 때문에 원시집이 발간되었을 때의 작품으로 전집을 다시 출간해야 한다는 의견과, 개작은 시인의 시적활동성이 강하다는 증거이므로 개작본이 정본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어떤 작품을 정본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연구자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초 발간된 미학적 아우라는 존중될 필요가 있으며 왜 개작이 이루어졌고 개작의 과정에서 그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밝히는 일이 또 하나의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한원균 / 고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문장 웹진 2008년 2월호


ㅇ (비단 지난달의 경향만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시적 깨달음와 환영幻影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시적 깨달음이야 직설적인 잠언이 아닌 이상 온갖 수사와 장치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환영은 정말로 환영歡迎받는 장치라고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환영幻影은 환상과 공상과 허구와 꿈,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깨달음과 환영의 결합은 또 다른 은유다.

- 윤의섭 / '현대시' 2008. 1월호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글쓴이 : 장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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