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서봉교 詩人의 詩에대한 感評./2007년 2월 17일/이용대시인 본문
(感評) 서봉교 시인의 시에대한 감평.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라는 시를 중심으로.
과거를 현실로 끌고 온 시.
우리가 시를 쓸 때의 그 시제(時制)는 대략 네 가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반추하여진 감정들을 여하히 걸러내고 또 추려내고 골라가며 앞 뒤 좌우를 살펴 깔아놓는 응축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1. 시대별 연결 사항.
2. 전체적 구도.
3.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중간적 단계. 그리고 그 두 번째가 6행에서 말하듯 군인으로 소집된 후에 몇 모금 피우게 되었든 그러한 담배 냄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사실 군 생활이란 정서적으로 매우 매마를 수밖에 없는 그러한 집단 생활이다.이곳에서는 언제나 엄격한 정신적 육체적 긴장만이 요구되는 일사분란의 기계적인 생활행동만 허용되었든 특수한 사회이다.사람에 따라서는 이루 측량하기 힘들정도의 정신적 공항과 심적 부담이 연속되어지는 황량한 곳이기도하다.여기엔 어떤 개인적인 감정 따위나 병사 개개인의 개성은 전적으로 무시되는 곳이기에 오직 명령 그 하나만 존재하는 몰인정한 특수집단이라 해도 무방한 곳이다.
4. 냄새.
5.이 시의 정리.
상략/
늘 땀에 벤 아부지 작업복에서/
그 후/
그런데도 매일/
라고 요략해 볼 수도 있겠다.
6.유전적 냄새. 그러므로 다시 본론으로 돌아 와 아버지의 냄새란 도대체 무슨 냄새라는 말인가?
7. 짧은 감상: 이러한 평상적 수평적 사고들을 형이 상학적 승화 차원으로 끌어올려 놓고 잘 다듬은후 한편의 작품다운 작품으로 단장하여 시로 세상에 내놓은 것이라하겠다.
8.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 라고 한다면 1) 담배 냄새를 맡으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해 놓고 본인이 담배를 피우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는 어디에고 명확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사람들 옆에 가면 아버지 냄새를 맡는다 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냄새가 반대로 역겨운 냄새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냄새로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는 것인지 문맥의 통일성에 비추어 볼 때 좀 애매모호하다고 보여진다.이것은 시의 뒷면에 숨겨진 시인의 숨기운 뜻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독자들이 매꾸어야 할 공간의 남김도 아니라고 보여졌기 때문이다. 또한 아버지를 생각한다 해 놓고 일부러 /우라질/이라는 비어를 사용했을리가 만무하기도 하다. 왜 /우라질/이라고 했을까.하기사 아버지가 전혀 못 듣는 곳에서는 역설적으로 한번쯤 투정적 애교로 해 몰만하기는 할 일이겠지만. 그러나 감상하는 독자를 위해서라면 문장 구성의 의미전달만은 분명히 해야 된다고 본다.이러한 단어는 극히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임엔 분명하다 하겠다. 그리고 접두사나 접속사의 명확한 선택 사용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아부지 /라고 한 아버지와 /우라질/의 독백에 대해. 아주 간혹 어떤 시에서 이러한 속어나 발음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보는데 이것은 일종의 기교라고 볼 수 있다(기교라는 뜻을 작자는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위에 말한 /우라질/과 같은 계통의 단어나 /아부지/같은 단어 사용은 그리 권장할 만한 일은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아버지의 냄새를 그토록 못잊어했으면서도 끝판에 가서는 왜 /우라질/이라고 신경질을 부려야 했는지..생각하기도 싫었다는 것이였을까 아니면 또 그생각이 나게한다는 투의 자기 비아냥이였을까.이것은 이 시를 쓴 시인만이 알 수 있는 독백인 것이기에 독자들은 그 시 감상끝에 오는 약간의 씁쓸한 뒷 맛만 가지게할 뿐이다. 무엇이였나? 시인의 설명을 한번 듣고 싶어진다.
3)이 시의 전반 부분이 약간 설명조의 표현이라 한다면? 이러한 나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먼저 시 전문(前文)을 아래와같이 한번 줄여 본다면 어떠할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ㄱ) /모내기 할 적/ ㄴ) /아버지 등에 엎혀 큰집에 갈 때/ ㄷ) /맡았던 구수한 새마을 담배내음/ ㄹ) /그 냄새가 아버지 냄새였다/ ㅁ) /늘 땀이 벤 작업복에서/함께 나던 그 내음이/.....라고.
이렇게 해 보아도 전체적 문맥 자체는 그다지 손상되었으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미안하게도 이렇게 내 임의로 한번 바꾸어 본것은 이 시 전체에서 흐르고있는 일관된 의미를 참 좋게 보았기 때문이지 그 외에는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면서 또 서 시인의 깊은 양해를 구한다.다시말해서 "어버지의 냄새"가 과연 어떤 분위기에서 풍겨나던 냄새였다는 것을 내 비쳐주기 위해서 11연이나 달하는 막대한 분량을 제공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하겠다.
4)그러나 시 한편 전체를 지극히 객관적이고도 나의 관조적 심상으로 바라보았을 때는 참으로 잘 짜여진 시라고 여길만하다고 하겠다.어릴때 깊이 각인되었든 그 기억이 현재의 시상으로 떠올랐었다. 이것을 보다 명확히 보조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과 군 시절의 작가의 태도를 분명히 그려 넎음으로써 다시 한번 현실의 심적 상태를 확고히 투영시켜내는 시적 구도는 높이 살만하다고 하겠다.
9.맺는 말. 자유시란 정형시의 반대되는 개념의 시로써 알다시피 본래 어떤 형이나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사는 약 100여년에 불과하지만 고 중세의 신앙문학에서 인본주의적 개인문학으로 옮겨오면서 낭만주의문학이라는 형틀을 벗어나 실존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게된 시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자유시라해도 무엇을 방만하게하거나 일정한 질서도 없이 온 사방을 어지럽히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따라서 분명히 있어야 될 것은 사념의 질서와 보이지 않는 내재적 어떤 느낌의 줄기 하나쯤은 분명히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그 표현 형식은 단계적 표현 엮음으로 한다든지 아니면 상충적 혹은 충돌적 대치에서 절충적이고도 독창적인 문학성을 이루어 내는 결합이나 그 어떤 적응을 취한다든해도 좋다.아니면 아주 영원한 대칭의 상태로 그냥 놔 둠으로써 그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한다든지..그것 또한 자유이다. 박진환 선생이 쓴 그의 대시론집(大詩論集)에서도 그 모든것을 한마디로 집약하자면 즉 시 기법이나 시론에 충실하되 결코 그것에 억매이지는 말라는 것이다.자유시를 써는 우리들로서는 그 어떤 형식,어떤 형태의 것도 차용할 수 있는 것이며 영시(英詩)나 한시(漢詩)나 정형시(定形詩) 및 그 어떤 영력도 자유로이 넘나들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이 모든 현상을 배움으로써 잘알고 수용하되 이것을 날것으로 남겨두지말고 내것으로 소화해서 새롭고도 신선한 것으로 변용하여 멋있는 시를 만들어내야만이 아는 것에대한 본래의 효용성이 있게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의 시 속에는 응축된 본인의 특유한 스토리가 있어야하고 지향하는 각도 또한 분명해야한다고 본다. 선생님들도 우리에게 가장 우려하는 점이 시 내용전체가 애매모호하며 우유부단해서는 그것은 시가 아니라 일종의 넋두리에 불과해지는 위험을 경계하라는 것이기도 하다.시에서는 어떤 철학적이며 추상적 개념의 언어보다가는 구체적 사건에 입각한 시어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다.아울러 시는 철학이 아니라고 보기에 관념적이거나 수사학적 표현도 경계해야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시는 진리나 철학을 전달하는 문학 형식이 아니라 시인의 특수한 <느낌>을 전해 줌으러써 독자와 함께 공명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기때문이다.이러한 <느낌의 전달>이 곧 시향(詩香)이라는 것이다. 향기 없는 꽃은 꽃이 아니다.만일 꽃에 향기가 없다면 그 어떤 눈먼 벌이나 나비조차도 깃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시향이 없는 시에는 독자들을 향한 그 어떤 느낌도 전해주지 못할뿐더러 어느 누가 향기 없는 나의 시를 찾아 올 것이겠는가. 산문시라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은유>나 <숨김>이라든지 <얼비치>고 <스며들고> <베어남>이라는 시의 고차원적 특성을 도외시한체 모든것을 풀어 씀으로써(해체시) 시소설, 시콩트, 뭐 시수필,이라는 기형아 같은 것을 배출하게도 하였다(포스트모더니즘/특히 시에서 있을 수도 없는 대화체의 시 등).(산문시와 운문시에대해서는 나중 나의 다른 思考에서 말할 것이다). 새로운 기법을 시도해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시>라는 본질을 경솔하게 망각하면서까지 행해지는 개척이란 그 뿌리가 결코 튼튼치도 못할분만 아니라 그리 뭐 오래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본다.이러한 것은 시의 변질이지 변화는 아닌것이라고 본다. 산문시나 해체시가 지금 <유행?>이라는 말을 들을었때 나도 내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문학에서 유행이 어디있다는 말인가.다만 작가의 문학적 특성이 있을 뿐이지. 고전주의에서(신앙주의) 낭만주의(초월주의)로 낭만주의에서 자연주의(인간주의)로 자연주의에서 과학주의(개성주의) 및 실증주의로 여기서 현실주의 및 초현실주의로 옮겨 오면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몹시도 복잡한 정신세계에서 사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것은 인간 그 자체가 그마만큼 우주적이라는 것이지 복잡하다고해서 꼭 혼돈(混沌)스러운 것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이 모든 것들이 다만 혼재(混在)되어 있는 것 뿐이다.혼재되어 있는 것 중에서 각자는 자기에 알맞는 그리고 훌륭한 자기의 문학적 체널을 찾아 소질을 갈고 닦으면 되는 것이다.그러나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미(美)이며 무엇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추구해야할 시정신(詩精神)의 상위개념인가는 분명히 알고 가야한다는 것이다.
하이튼 서 시인의 시들을 몇편 읽고 인생의 선배로 말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란 "지나친 것은 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 라는 말을 전하면서 이 미천하고 치졸하기만한 위의 나의 글을 감히 마치려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완벽한 시란 결코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2007.2.17일 서울. 가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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