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오래된 농담 / 천양희 본문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홥환수 가지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 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더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 길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더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에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거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더 깊고 서늘했다
계간『서정시학』2009년 여름호
'좋은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나절 내린 비에 (외 1편) / 허형만 (0) | 2010.12.18 |
---|---|
호박죽 (0) | 2010.12.18 |
[스크랩] 희안하게 웃긴 시 한편 (0) | 2010.11.10 |
거리의 식사 (0) | 2010.07.28 |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0) | 2010.07.21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