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호박죽 본문
호박죽
이창수
마루 끝에 앉은 외할머니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했다
늙으면 죽어야죠!
나는 외할머니의 말씀에 맞장구를 쳤다
그날로 외할머니는 머리를 싸맨 채 드러누웠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어머니의 부지깽이를 피해 마루 밑에 숨었다
마루 밑 누렁이는 내 입술을 핥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외할머니의 지당한 말씀에 대한 호응이
빨간 불꽃이 살아 있는
부지깽이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날 저녁 호박죽 한 그릇을 다 드시고도
입맛이 없다는 외할머니에게
한 그릇 더 드시라는 어머니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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