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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한나절 내린 비에 (외 1편) / 허형만

오선민 2010. 12. 18. 14:46

한나절 내린 비에 (외 1편)

 

   허형만

 

 

 

한나절 내린 비에

연 사흘 쌓인 눈이 다 녹았다

늙은 감나무에 핀 저승꽃을

엷은 햇살이 한참을 어루만지다가

심심한 사내의 신발 끄는 소리에 놀라

새처럼 하늘로 포르르 오른다

지상의 꿈은 아직 축축하고

심심한 사내는 곧 다가올 저녁 냄새를 맡은 듯

가랑잎처럼 어깨를 한번 들썩이곤 들어간다

 

우주가 고요해졌다

 

 

 

시인

  

 

 

귀가 없는 뱀은 혀로 듣고

개구리는 눈으로 듣는다는데

시인이여, 무엇으로 듣는가

세상으로 열린 귀가 멀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오늘

눈발이 날리는 텃밭에 쭈그려 앉아

그동안 헛소리에 병든 시들을 불태우나니……

 

  

 

                                    — 시집 『그늘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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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고, 중앙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월간문학》신인상 가작 입선으로 등단. 첫 시집 『청명』(1978) 이후 『그늘이라는 말』(2010)까지 시집 13권. 현재 목포대 국문과 교수.

 

출처 : 푸른 시의 방
글쓴이 : 강인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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