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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의 밤 / 강인한 본문

좋은 시 감상

마술사의 밤 / 강인한

오선민 2011. 1. 14. 05:27

                          

 

 

마술사의 밤

강인한


귀를 팔았다
이 범람하는 어둠 속에서는 휘휘 내젓는
손이면 충분하였고
무능보다 차라리 부패를 선택한 뒤
날마다 발등을 찍고 있었으므로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이 귓속에서 자랐다
자라서 숲을 이루고 산을 이루고
마침내 목젖 깊은 데까지 숨어들어
칼끝처럼 찌르는 것이었으니 

 

눈을 감는다
주춤주춤 팔을 앞으로 뻗고
발부리에 걸리는 물컹한 걸 느낀다
살짝 비켜서는 한 걸음이면
모든 게 분명해지리라 
차마 참기 어려운 건 치욕보다
비열한 소문을 불어서 뇌관을 터뜨리기 

벼랑 끝 허공에서 내딛는 단 한 걸음
그 순간 눈을 감았다
풍선이 터지며 극채색의 꽃 한 송이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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