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스크랩] 풍진세상(風塵世上)에 보내는 정문일침(頂門一鍼)/구재기시인 본문

시 비평

[스크랩] 풍진세상(風塵世上)에 보내는 정문일침(頂門一鍼)/구재기시인

오선민 2011. 4. 5. 17:35

풍진세상(風塵世上)에 보내는 정문일침(頂門一鍼)

구재기(시인)


문학이 존재하는 세상에는 그 세상에 대한 비판의 의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특히 그 세상이 가지는 모순이나 좌악,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가지는 결함 등을 보다 못해 이에 대한 비평을 거침없이 통렬하게 펜을 휘둘러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댈 만족 및 통쾌함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풍자(諷刺, satire)요 이를 표현하는 시작품을 이르러 풍자시(諷刺詩, satirical poem )라고 한다. 그리고 최근 우리민족 고유의 운문인 시조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풍시조(諷詩調)가 문단에 새롭게 등장하여 많은 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도, 글로 표현할 수도 없는 암담한 시대에 이르고 나면, 정면에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비유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재치를 활용하여 어르거나 혹평, 또는 폭로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부정한 사회 현상의 결함을 과감하게 꼬집어 왔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바로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부르짖으며 궁극적으로 민족의 행복을 구가하여 오기도 하였다.

 

 

세종로 좌대에 높이 앉으신 세종대왕님


     어리석은 백성들 어여삐 여겨 한글 만들어주셨는데요


    
어쩌지요 어리석은 백성들 꼬부랑 노랑말에 혀가 구부러  졌으니

     -- 박진환의 [세종로에서] 전문

 

이 풍시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세종로에 모셔진‘ 세종대왕’의 동상을 떠올리면서 그분이 만드신 한글이 비참한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이전에 이미 유치원, 유아원에서부터 붐을 일기 시작한 영어 교육의 결과로, 두 눈을 돌려 아래와 위 - 오른쪽과 왼쪽 - 앞과 뒤를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온통 ‘어리석은 백성들 꼬부랑 노랑말에 혀가 구부러’진 모습을 보일 뿐이다. 위대한 한글을 창제하신‘새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들 어여삐 여겨 한글 만들어주셨는데’ 그 깊은 뜻을 져버리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태에 대한 정문일침(頂門一鍼)을 가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떤 나랏님은 걸어서 38선 넘어갔다 오던데


무슨 그리 먼 길이라고 그나마 백성들 몰래 길트기 모임 운운이라니


38따라지는 한끗인데 국토는 두끝으로 갈라져 아득하기만 하니


 
-- 박진환의 [3•8따라지] 전문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민족의 비극인 38선에 따른 남북의 이데올로기의 비극적 ‘무슨 그리 먼 길이라고 그나마 백성들 몰래 길트기 모임 운운’에 대한 통령한 비판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3∙9선’이 가지는 숫자적 해석을 ‘3∙8따라지는 한끗인데’라는 비유는 통령하다 못해 씁스레한 비극의 현상을 엿보고 있는 듯하다. 


나이트클럽에 가려고 주민증 위조한 10대, 입시학원 상위반에


들려고 수능 성적 위조, 졸업증명서, 외국어 성적표까지,


얼굴과 마음도 짝퉁 아니라고 누가 믿겠습니까?

   -- 임유행의 [짝퉁시대] 전문

 

굳이 말하지 않아도 풍시조에는 이렇게 현상의 그늘에 숨겨진 본질을 꼬집어 내고 있다. 오늘날의 그릇된 일등 의식에 사로잡혀 ‘짝퉁’의 시대를 열어감으로써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현실에 대한 비평을 가한 풍자시이다. 이와 같이 풍시조에는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뚜렷한 비평 정신이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 이후, 독일의 하이네, 러시아의 네크라소프, 프랑스의 라블레, 혁명 후 러시아의 마야코프스키. 현대 독일의 케스트너 등 유명한 풍자 시인은 많이 있어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괴테, 아폴리네르, 자크 프레베르 등도 우수한 풍자시 여러 편을 남겼다.

이제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 형식을 빌어 풍시조가 풍자 그 자체에 의미를 뛰어넘어 시조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다하기를 기대하여 본다. 특히 풍시조 그 자체에 풍자 정신을 넉넉히 삽입하여 현실을 보다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옛시조처럼 국악인들로 하여금 불리워지는 풍시조로서까지 건재해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이미지는 물론이려니와 리듬을 살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모쪼록 풍시조가 시조가 가지는 민족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도 정문일침(頂門一鍼)의 강한 메시지로 하여금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 그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기를 바란다.●

 

-- [諷詩調] 2010년 5호.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서봉교 원글보기
메모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