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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조정인, 「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평설 / 홍일표

오선민 2011. 5. 21. 11:07

조정인, 「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평설 / 홍일표

 

 

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

 

   조정인

 

 

얼마나 깊은 데서 띄워 올린 언어인가 네 고요한 응시는

상황 너머로부터 검정 장미꽃잎만을 받아먹고 사육된 종족

 

너는 간간 내게로 와서 모스크 불빛 같은 눈을 들어 갸우뚱

바라보고는 하지 제 심연의 슬픔이 외따로이 떠 있는 동그란 그곳에

그만 시큰하도록 발목이 빠져 사랑한다, 고백하고 말았는데

 

나를 따돌린 저편에서 간헐적으로 흘리는 네 토막울음은

사라지기 위해 있는 차가운 음악, 그 날 너는 열에 들뜬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었나 근심을 늦추지 않은 연약한 불꽃으로

 

고양이와 나는 각자의 침묵에서 두 점 파란 불꽃을 피워 흔들렸다

어둠속에 일어나 짐승의 반짝이는 물가에 나란히 앉아본 자는 안다

종(種)의 경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우린 신의 식탁 아래서 빵부스러기를 줍는 이방의 존재들이지만

종종 이마를 맞대고 소곤거리는 사이다 그 작은 미간에 입술을 얹자

눈을 감는 너, 열렬히 나를 듣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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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곡진한 시의 미학

 

 

   좋은 시집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올 봄에 아껴가며 읽고 싶은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조정인 시인의 『장미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 서정시도, 단순한 현실재현적 시도 아닌 그래서 금강석처럼 더욱 빛나는 시집. 그 속에서 좋은 시 여러 편을 발견했다. 그 중에서 「고양이는 간간 상황 너머에 있다」는 시를 주목하여 읽었다. 발표 당시와는 상당히 달라진 시다. 시인은 시집으로 묶기 전에 수차례 퇴고의 작업을 거친 것이다.

   김수이 평론가는 시집 해설에서 조정인의 시를 ‘특정 시공간과 개체의 경계를 넘어 다른 시공간 및 존재들과 자유로이 접속하고 연대하는 시’라고 하였다. 이 시 역시 그 범주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양이를 통해 우주적 사고의 일단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황 너머를 응시하는 고요한 시선은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요체이다. 조정인 시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존재의 이면에 대한 곡진한 시선이 시를 깊고 넓게 만드는 핵심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2연에서 대상과 화자는 하나가 되어 숨 쉰다. 대상에 대한 사랑과 외경은 사유의 심원한 깊이에서 비롯되는 것. 여기서 대상은 애완동물로서의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다. 그것은 화자와 영적으로 소통하는 ‘모스크 불빛’같은 존재이고, 동시에 뭇 생명이며 한 편의 시인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이고, 개체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다. 그 결과 화자는 ‘종(種)의 경계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신의 식탁 아래서 빵부스러기를 줍는 이방의 존재들’이다. 그러나 종(種)의 한계를 넘어 내적으로 교류할 수 있고, 시공까지도 초월하여 서로 느끼고 교감하면서 생의 비경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편견과 독선으로 선을 긋고 나누고 구획하면서 옹색해진 삶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광활한 삶의 지점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대상과의 내밀한 소통을 통해 얻어낸 시적 진실이다. 조정인 시인은 고양이와의 남다른 ‘연애’를 통해 사물 속에 숨어있는 신성을 발견하고 존재의 비의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시인이다. 독특한 색깔과 시선을 견지하고 현실과 우주, 역사와 종교 등을 넘나들면서 자유롭게 펼쳐나가는 시의 공간은 앞으로 더욱 더 깊게 확장될 것이다. 활원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부리는 천부적 솜씨, 섬세한 감성과 개성적 시세계는 여타의 평범한 시들과는 전혀 다른 층위에 그녀의 시가 자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모처럼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몸과 마음이 개운하였다.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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