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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홍일표의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감상 / 권혁웅

오선민 2011. 7. 30. 16:32

홍일표의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감상 / 권혁웅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

 

   홍일표 (1958~)

 

 

집 주인의 양육법이 궁금하다

태생이 다른 농경과 유목의 혈통

방금 전 냉장고가 삼킨 것은

생선 몇 마리

그 중 한 마리가 고양이 입 속으로 들어간다

생선이나 육류를 좋아하는 식성이 닮았다

냉장고와 고양이는 아픈 기억 탓인지

긴 꼬리를 등 뒤에 감추고 산다

고양이는 주로 검정을 선호하고

냉장고는 주로 흰색을 선호한다

가끔은 서로 옷을 바꿔 입기도 하는 것이

그들의 습속이다

둘의 연애는 유구하다

본적과 취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고받는 눈빛이 뜨겁고 깊은,

몸속에 환하게 불을 켜고 사는 그들은

24시간 소등하지 않고

푸른 눈빛으로 어둠 위에 군림한다

냉장고 옆에 애첩처럼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가

집 주인의 커다란 귓속을 밤새도록 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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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장고와 고양이가 연인 사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둘 다 생선이나 육류를 좋아하고 꼬리를 뒤에 말아 넣고 있으며 몸속에 불을 밝히고 산단다. 그래도 “본적과 취향”은 달라서, 냉장고가 은둔형 외톨이라면 고양이는 야경꾼에 가깝다.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고기나 먹어댔으니 냉장고, 저렇게 뚱뚱해진 거다. 그가 내는 빛은 밤낮을 모르는 게임중독자의 배광일 테고. 반면 고양이의 식욕은 야생의 증거다. 밤마다 마을을 도는데 주변이 캄캄하면 몸에서 낸 빛으로 제 눈알을 밝힌다.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품이, 자정을 넘긴 거리의 ‘청소년 여러분’ 같다. 그 둘을 이어붙이니, 이 시대 젊은이의 초상이 다 들어왔다. 그러니 “둘을 함께 입양한 집 주인”은 운명이거나 신이겠다. 귀가 유난히 긴, 자비로운 부처님이겠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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