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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평

맹문재의 「눈」평설 / 홍일표

오선민 2011. 10. 25. 18:40

 

맹문재의 「눈」평설 / 홍일표

 

 

         눈

 

 

                        맹문재

 

 

 

타협을 모르는

관습을 모르는

후회를 모르는

치졸을 모르는……

 

 

저 신들린 몸짓

 

 

무기를 버린 채

지혜를 발휘하듯 명분을 만들고 있는 나를

창끝으로 겨누고 있다

 

 

썩은 물 같은 세상 갈아치울 것이라는 명분에

화장품을 바르는 나의 손으로는

방어할 수 없다

 

 

저 신들린 몸짓이여

 

 

깊은 땅굴 같은 변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를 창끝으로 밀어다오

불로소득에 진드기처럼 매달려 있는 나를

산불처럼 태워다오

 

 

비누 거품처럼 꺼져가는 나를

세차게 흔들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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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반성의 미학

 

 

  그렇다. 이 시는 삶과 맞장 뜨는 시다. 아주 정직하게 현실 대응 의지를 날카롭게 벼리는 시다. 여기에는 꼼수도 얄팍한 기교도 현학적 포즈도 없다. 근래에 보기 드문 희귀종이다. 맹문재 시인이 일관되게 지향해온 시적 세계가 명징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올곧게 삶과 맞서 싸워나가는 시인의 투철한 자기반성과 비판의 칼날이 사뭇 매섭다.

 

불순한 일상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물이 곧 ‘눈’이다. 타협도 치졸도 모르는 순수 그 자체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통해 화자는 엄정하고 냉철한 눈길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다. 이렇게 정직한 시선으로 자아의 누추와 비굴을 직방으로 드러내는 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비판의 ‘창끝’을 타자와 외부 환경이 아닌 화자 자신에게 겨누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상투적이고 어설픈 현실 비판의 시들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일회적 울림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다반사인데 그 이유는 항상 자신을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주체와 대상을 구분하고 자신을 주체의 자리에 놓으려는 습성 때문이다. 그러나 맹문재의 시는 그러한 혐의에서 자유롭다. 그의 시를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분’에 붙들려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협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신의 비루한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진드기’ 같은 삶을 가차 없이 불태우고 찌르고 흔들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가열차다. 진정성이 시의 중요한 미덕 중의 하나라면 그의 시는 소중한 가치와 덕목을 갖춘 셈이다.

 

관념은 삶을 넘어서지 못한다. 구체적인 삶에 기초한 맹문재의 시가 늘 가슴 뜨겁게 와닿는 것은 온갖 허위적 담론과 모순에 적극적으로 응전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알몸의 시다. 거짓과 허위의 치장을 벗어버리고 기꺼이 알몸이 되어 순결한 생명의 표상인 ‘눈’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만큼 외롭고 힘들 것이지만 시인은 아파야 하고, 피폐하고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가야할 것이다. 그것이 본질과 진실에 가닿기 위한 긴 여정의 한 굽이이기 때문이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시로 여는 세상》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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