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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의 「먼 곳」감상 / 서대선 본문

시 비평

문태준의 「먼 곳」감상 / 서대선

오선민 2012. 5. 9. 18:26

문태준의 「먼 곳」감상 / 서대선

 

 

          먼 곳

 

 

                                    문태준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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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척이 천리’라는 말이 있지요? 물리적 환경 속에서 거리가 아무리 가까워도 심리적 거리가 멀다면 “먼 곳”이 존재하는 것이 되지요. 형태심리학자 krurt Lewin(1890-1947)은 인간의 생활공간에서 물리적 공간 보다는 심리적 공간의 장(field)이 우리의 행동에 더욱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하였답니다.

물리적 공간 속에서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무관심 하거나 우리의 욕망과 전혀 관계가 없을 때나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별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하면 할수록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히고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나게 되지요.

인터넷 매체가 발달한 오늘날 지구반대 편에서도 영상대화가 가능하고, 페이스 북이나 트위터, 카카오 톡 등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의 소식을 접하며 살 수 있기에 시공간의 물리적 거리는 크게 문제되지 않기도 하지요. 그러나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가족 간에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관심도 없고 대화도 없다면 “헤아려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먼 곳”이 존재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서대선(신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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