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이문재의 「화전」평설 / 홍일표 본문

시 비평

이문재의 「화전」평설 / 홍일표

오선민 2012. 8. 14. 10:26

이문재의 「화전」평설 / 홍일표

 

 

         화전

 

 

                                                    이문재

 

 

나 잡목 우거진 고랭지

이 여름, 깊은 가뭄으로 흠뻑 말라 있으니

와서, 어서들 화전하여라

나의 후회들 화력 좋을 터

내 부끄러움들 오래 불에 탈 터

나의 그 많던 그 희망들 기름진 재가 될 터

와서, 장구 북 꽹과리 징 치며

불, 불 질러라, 불질러 한 몇 년 살아라

한때 나의 모든 사랑, 화전이었으니

그대와 만난 자리 늘 까맣게 타버렸으니

서툴고 성급해 거두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숲을 찾았으니

이제 나, 잡목 우거진 고랭지

와서 불질러라, 불

 

 

-------------------------------------------------------------------------------------------------------------------

 

존재 전환의 성소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한 편의 시가 탄생한다. 지금 눈앞의 시는 제의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생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불꽃이 발화의 시작이다. 그 불로 죽음을 통과하고자하는 의지가 담긴 텍스트에는 아직 폭발하지 않은 수십 톤의 화약이 저장되어 있다. 누군가가 다가와 뇌관을 건드리고 불을 지르면 한 순간에 폭발하고, 번개의 심장을 나눠 가진화염이 타오를 것이다. 조심하시라. 인화성이 강한 것이라 자칫 당신의 바싹 마른 삶도 대책 없이 점화될지 모른다. 불은 존재 전화를 위한 욕망의 발현물이다. 자기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하는 목숨도 있지만 「화전」의 주체는 파괴가 아닌 갱신의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두에 나타난 시적 주체는 일그러진 존재의 현주소를 언술한다. “잡목 우거진 고랭지”가 곧 “나”임을 밝히고, 자기 검증과 성찰의 과정을 통해 자아의 부정적 이면을 가차 없이 드러내면서 벌거벗겨진 내면의 초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깊은 가뭄”은 황량한 생의 모습이며 그러한 정황은 갈증을 심화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이어서 시적 주체는 자신을 대상화하여 제시하면서 사람들에게 “화전”을 촉구한다. 일종의 자기 정화 의식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변혁의 용기는 타자에 대한 깊고 융숭한 배려를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다. 주체의 소멸과 파괴로 형성된 “기름진 재”는 새로운 탄생을 암시하는 표지이다. “희망”과 “부끄러움”을 다 태우고 그 위에 우뚝 설 한 채의 성채는 미래의 존재 양식이다. 이전과는 다른 혁신적 삶을 지향하는 화자는 반복적으로 “불, 불 질러라, 불질러 한 몇 년 살아라”고 주문처럼 읊조린다.

시적 주체의 자기반성은 2연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서툴고 성급해 거두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과거의 실패한 삶을 자괴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지난날의 삶이라는 것은 이루지 못한 사랑 같은 것이고, 실패의 원인은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회한으로 얼룩져 있다. “잡목 우거진 고랭지”라는 주체 확인 행위는 현재의 존재의 자리가 불임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회임과 재생의 성소로 옮겨가고자 하는 가열찬 욕망의 표현이다. 그 욕망의 내부에는 존재 전환을 꿈꾸는 뜨거운 불씨가 숨겨져 있다.

불은 신성한 정화 의식의 상징물이다. 현실과 존재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모습을 소거하고 새롭게 거듭나고자하는 변화에 대한 열망을 함유하고 있는 작품이「화전」이다. 황량한 잡목 숲이 전소한 자리에 노란 복수초 한 송이 고물고물 몸을 비틀며 올라오는 순간, 세상은 잠시 기우뚱 할 것이고, 그곳에 원형적 삶의 원리를 꿈꾸는 어느 외로운 영혼의 그림자도 조용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