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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오늘 | 시낭송가 김민서 씨

오선민 2013. 3. 4. 17:06

 

일하는 오늘 | 시낭송가 김민서 씨

 

“시낭송가는 시를 연기하는 배우예요”

괜한 일에 마음을 다친 날에는/ 시간을 들여/ 멸치를 한 바구니쯤 다듬는 일도/ 위로가 된다// (중략)// 뜨거운 불 위에서/ 진국으로 우러날 녀석들을 생각하면/ 모진 세상살이 사람살이로 아픈 내 마음도/ 어느 때에는/ 은근하고 진하게 만사를 버무려/ 맛낼 수 있는 순간이 오리라 믿어 보는 것이다

- 김민서 작 ‘멸치를 다듬으며’ 중에서 -

시 한 편 생각나는 가을이다. 좋은 시를 만나기 위해 시집을 뒤적이는 것도 좋지만, 시낭송 공연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울산 지역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시낭송가 김민서(41) 씨를 만났다.

시낭송은 공연예술이다

시각장애인 김민서 씨는 2009년 6월 ‘제8회 이형기문학제’에서 그림내 시낭송회가 주최한 ‘전국 시낭송대회’에 참가하여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며 시낭송가로 정식 데뷔했다. 2010년에는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이 주최한 ‘점자 문예작품 및 독후감 현상공모’에서 ‘멸치를 다듬으며’라는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작곡가의 곡을 노래로 부르는 사람이 가수라면, 시인의 시를 목소리로 전달하는 사람이 시낭송가예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수상하면(대회마다 규정이 다름) 시낭송가 증서가 주어지고, 전문 시낭송가로 인정받는다.

“가수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가수도 노래를 부를 수 있듯이,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해도 시낭송은 할 수 있어요. 다만 전문성의 차이겠죠. 시낭송을 단지 시를 읽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에요. 무대에 올라 낭송을 할 때는 음악부터 의상, 소품, 제스처 등 공연예술적인 측면도 연구해야 합니다.”

낭송가는 연극배우와 같아

김민서 씨는 울산의 시각장애 낭송가들과 함께 시낭송이 담긴 CD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를 발매했다. 또한 출판기념회나 울산 지역 문화예술 행사에서 시낭송 공연으로 무대에 섰다.

“한 편의 시를 무대에서 낭송하기까지는 정말 많은 과정들이 필요해요. 먼저 행사의 성격과 공연 무대를 고려해서 어울리는 시를 고릅니다. 그 다음엔 시를 여러 번 읽으면서 분석하고 이해하죠. 내 속에서 시를 무르익게 하는 시간이에요. 낭송 방법도 선택해야 합니다. 시에 따라서 기쁨을 표현하거나 슬픈 감정을 넣기도 하죠. 시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고 의상을 선정하며, 무대예술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 넣습니다.”

낭송할 때는 너무 난해한 시보다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시를 선택한다. 하지만 신춘문예에 갓 등단한 젊은 시인들의 작품도 마다하지 않는다. 좋은 시를 발굴하고 보급하는 일은 시낭송가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낭송과 낭독은 다르다. 낭송은 시를 외워서 하는 것이고, 낭독은 보고 읽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종종 시를 외우기 어려워 시낭송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만의 방법론이 있어야 해요. 시를 외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암기법이 생기듯이, 시를 많이 읽고 낭송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세요.”

시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겸하기도 한다. 음악과 의상, 소품 등 모든 것이 한 편의 시를 위해 선택되고 연출된다. 발성과 호흡, 발음 훈련도 뒤따른다. 마치 무대에 서는 연극배우와 같다.

“목소리 좋은 사람이 시낭송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좋은 낭송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기술적인 훈련과 연출이 필요해요. 앞이 보이지 않으니 무대에서의 움직임이 과감하지 못할 때가 있긴 하지만, 표정 연기 등 여러 가지로 많이 연구하는 편입니다.”

한 편의 시를 열 명이 낭송한다면, 열 편의 다른 작품이 나올 것이다. 시낭송이란 시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 띄어 읽고 호흡을 바꾸느냐에 따라 시의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시낭송에서 시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까닭이다.

시는 내게 사랑이자 감동

30대 초반에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그에게 시는 새로운 꿈을 열어줬다. 2007년 울산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주최한 시낭송가 양성프로그램에 참가한 후부터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지만 결혼하고 주부로 살면서 시를 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를 만났고 시낭송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내 낭송을 듣고 ‘시낭송을 배우고 싶다’고 말해주실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올해는 안마 수련원에 실습생으로 입학한 탓에 시 창작에 전념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시인으로 등단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다.

“중도시각장애인으로서 저 역시 재활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시낭송을 하면서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요.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에게 제 시낭송이 용기가 되었으면 해요. 앞으로도 좋은 시낭송가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김민서 씨가 무대에 서면 관객들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이 시낭송을 한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주목을 받지만 곧이어 신뢰가 가는 목소리와 아름다운 무대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낭송가 김민서 씨는 세상에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남궁소담 기자

출처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47호

발행: 문화체육관광부 www.mcst.go.kr

발행일: 2011. 9. 10.

제작협력: 한국점자도서관 infor.kbl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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