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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스크랩] 염색 / 유종인

오선민 2013. 5. 30. 18:15

염색 / 유종인

 

 

 

나보더 앞서 세는 아내의 머리를

새벽에 염색해준다

 

안개가 피어오르듯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모래톱의 흰 왜가리들처럼 외발로 서서 졸고 있는

흰 머리카락들, 고개를 들기 전에

깜장 물 들여 검은 머리물떼새로 바꿔놓는다

 

잠시 잠깐 그렇게 속여두어야 한다

흰 왜가리 떼가 눈을 뜨고 제 몸빛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까지

검은머리물떼새를 머리에 얹고

저 거리와 시장을 젊은 피로 누빌 아내를 위해

새벽에 하는 아내의 염색은

하느님도 눈감아주어야 한다

부처님이 머리 기른 제자를 두지 않듯이

박박 삭발해버린 미련은 늘 머리카락으로 치렁치렁해지는 것

깨닫는 머리와 흐느끼는 머리카락 사이에

써레질하듯 염색약을 비벼대는 빗 하나 들고

 

창밖을 보면

허공을 잘 빗으며 내리는 빗줄기,

늙지 않게 물들이지 않아도 될 머리카락이

참 길게도 끊어 내린다

 

<염색>, 창비, 2007년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윤종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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