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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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 유종인
나보더 앞서 세는 아내의 머리를
새벽에 염색해준다
안개가 피어오르듯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모래톱의 흰 왜가리들처럼 외발로 서서 졸고 있는
흰 머리카락들, 고개를 들기 전에
깜장 물 들여 검은 머리물떼새로 바꿔놓는다
잠시 잠깐 그렇게 속여두어야 한다
흰 왜가리 떼가 눈을 뜨고 제 몸빛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까지
검은머리물떼새를 머리에 얹고
저 거리와 시장을 젊은 피로 누빌 아내를 위해
새벽에 하는 아내의 염색은
하느님도 눈감아주어야 한다
부처님이 머리 기른 제자를 두지 않듯이
박박 삭발해버린 미련은 늘 머리카락으로 치렁치렁해지는 것
깨닫는 머리와 흐느끼는 머리카락 사이에
써레질하듯 염색약을 비벼대는 빗 하나 들고
창밖을 보면
허공을 잘 빗으며 내리는 빗줄기,
늙지 않게 물들이지 않아도 될 머리카락이
참 길게도 끊어 내린다
<염색>, 창비, 2007년
출처 : 원주문학
글쓴이 : 윤종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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