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향(香) / 황동규 본문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향(香)
황동규
비 긋자 아이들이 공 차며 싱그럽게 자라는 원구 초등교 자리, 가톨릭 대구 교구 영해 수련장 현관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선들바람 속에 짙은 초록으로 불타고 있다. 나무들 가운데 불의 형상으로 살고 있는 게 바로 향나무지, 중얼대며 자세히 살펴보면 몇 년 전 출토된 백제 금동 향로 모습이 타고 있다 선들바람 속에 타고 있다. 혹시 금동장(金銅匠)이 새로 앉힐 향로의 틀을 찾다 향의 속내를 더듬다 저도 몰래 향나무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금 밖으로 흘리는 공을 되차주기도 하며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 나무 앞에 선다. 아이 둘이 부딪쳐 나뒹굴어졌다 툭툭 털며 일어난다. 이 살아 불타고 있는 향로 앞에서 이 세상에 태울 향 아닌 게 무엇이 있나? 속으로 가만히 물어본다.
-출처 : 시집『꽃의 고요』(문학과지성사, 2006) -사진 : 다음 이미지 -------------------------------------------------
향나무는 예로부터 줄기에서 암홍갈색의 질이 치밀하고 향기가 나는 심재를 잘게 쪼개서 제사나 의식을 지낼 때 분향료(焚香料)로 사용했다
바닷가에서 향나무가 선들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향연기의 모습 같았을 테지 마치 백제 금동향로를 만든 장인의 혼이 타오르는 듯한 착각을 화자가 못 느꼈다면 이 시의 백미가 어떠했을까 한 수 더 떠서는 아이 둘이 부딪쳐 나뒹굴어졌다 툭툭 털며 일어나는 걸 보고 ‘이 살아 불타고 있는 향로 앞에서 이 세상에 태울 향 아닌 게 무엇이 있나?‘하고 속으로 가만히 물어본다.
순진무구한 저 아이들은 바로 향이다 스스로를 태워 무럭무럭 자라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태워서는 향기가 나야한다 더러운 악취를 풍기는 어른은 지구를 떠나거라 오늘 따라 그렇게 외치고 싶다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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