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춘추 / 김광규 본문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춘추(春秋)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 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출처 : 시집『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 2007) -사진 : 다음 이미지 -------------------------------------------------
봄에 쓴 시 한 줄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가을에 쓴 시 한 줄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그 사이 여름 지나는데 온 나라가 물난리, 열대야로 고생했는데 시가 무슨 구제를 한다고 허튼 소리하지 마라 빈정대는 아내 말이야 맞다 마음은 챙겨도, 먹고 사는 일은 챙기지 못하니 범부의 꼬락서니가 가관인 게다
화자가 남쪽에 사는 사람이면 이 시의 여러 어휘 설정이 맞을 것 같다 산동면 산수유 마을에 가면 꽃 벌어지는 모습이 마치 소리가 나듯하다 방사선으로 퍼지는 그 모습이
상록교목이라 추위에 약하지만 따뜻한 남쪽 해안이면 그 싱싱함을 자랑해도 좋다 가로수로 심은 후박나무 따라 차를 몰다 보면 그 윤기가 눈에 박힌다
봄과 가을 사이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고 우리는 또 관망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에너지를 비축하여 춘추를 평정하러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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