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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춘추 / 김광규

오선민 2013. 7. 14. 21:43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춘추(春秋)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 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출처 : 시집『시간의 부드러운 손』(문학과지성사, 2007)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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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쓴 시 한 줄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가을에 쓴 시 한 줄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그 사이 여름 지나는데

온 나라가 물난리, 열대야로 고생했는데

시가 무슨 구제를 한다고

허튼 소리하지 마라 빈정대는 아내

말이야 맞다

마음은 챙겨도, 먹고 사는 일은 챙기지 못하니

범부의 꼬락서니가 가관인 게다

 

화자가 남쪽에 사는 사람이면

이 시의 여러 어휘 설정이 맞을 것 같다

산동면 산수유 마을에 가면

꽃 벌어지는 모습이 마치 소리가 나듯하다

방사선으로 퍼지는 그 모습이

 

상록교목이라 추위에 약하지만

따뜻한 남쪽 해안이면 그 싱싱함을 자랑해도 좋다

가로수로 심은 후박나무 따라

차를 몰다 보면 그 윤기가 눈에 박힌다

 

봄과 가을 사이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고

우리는 또 관망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에너지를 비축하여 춘추를 평정하러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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