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미루나무 연립주택 / 양문규 본문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미루나무 연립주택
양문규
눈과 비 오고 가는 사이, 꽃 피고 지는 사이, 저 훤칠한 미루나무 공사가 한창이네 반 지하 굴뚝새 연방 고난이도 비행을 하며 굴뚝을 넘나들고, 구불텅구불텅 태양의 빛이 한마당을 이루네 붉은머리오목눈이 비루한 1층 둥지 속에서 제 몸보다 큰 알을 품고 푸르디푸른 안부를 묻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저 찬란한 소리 울울창창 숲으로 가고 있네 딱따구리 몇날 며칠 부리, 부리로 막노동하는 2층 작은 다락방 젊은 날 아버지 맨손으로 들판을 일구던 피눈물 첩첩 묻어 있네 후두둑 빗방울 물고 나는 까치, 해와 달과 별을 따라가다 잠시 3층 난간에 걸터앉아 있네 아직도 봄 멀기만 한데 가난한 시인 긴 빨랫줄에 매달려 옥탑을 오르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지개다리도 없이 허공을 건너네 눈과 비 오고 가는 사이, 꽃 피고 지는 저 사이,
-출처 : 시집『식량주의자』(시와에세이, 2010)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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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루나무를 바라보고 자란 아이들은 안다
온 동리가 헐벗고 있을 때
미루나무만이 손짓을 하며 웃음을 주었고
희망을 가르쳐 주었다
그 나무 아래로 자갈길은 냅다 달리고
먼지 보얀 그 길에서 누런 이를 드러내며
천연덕스레 웃었던 아이, 너와 내가 있었지
벌거숭이 산자락을 견디지 못해 살러온
저 새들의 기구한 노력을 우리는 칭찬해야 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 엄마아빠가 챙기지 못하는
저 궁기
내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은데 애써 외면해야 하는
저 비겁
그럼에도 스스럼없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아가는
저 미물들의 노력이 부러워
내 마음의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지혜를 짜내어 위기를 헤쳐나간다
무관심이 팽배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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