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가지 않는 길 / 문정희 본문
가지 않는 길 / 문정희
무심히 저녁 신문을 보던
내 손이 비명을 질렀다.
그 이름,
부음난에 박힌
만난 지 20년도 더 넘은 그 남자가
오늘 새벽 별세했다 한다.
어느 봄날, 나하고 선본 적이 있는 남자
우리집 거실에서 오빠와 바둑을 두다가
찻잔을 들고 들어간 나의 종아리를
슬쩍 쳐다보고는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배던 남자
끝내 가지 않은 길, 저쪽에 서 있던
이제는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수줍은 흑백사진
나는 말없이 석간신문을 옆으로 밀쳤지만
밤하늘 같은 나의 추억 속으로
새로이 과부의 별자리 하나가
자리잡는 소리를 깊고 서늘하게 듣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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