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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감상

가방 / 김재성

오선민 2013. 9. 8. 09:35

 

'좋은 시·아름다운 세상' 『詩하늘』詩편지

 

 

 

가방

 

 

김재성

 

 

 

 

가방을 내려놓는다.

어쩌면 이건 혹이나 아니었을까

물주머니 하나 달랑 지고, 이 끝에서 저 끝

타박타박 모래벌을 걷는 낙타처럼

어쩌면 이승을 건너기 위한 물혹이나 아니었을까.

늘 짐스러웠던 가방의 안쪽, 그리고 보면

내 삶의 대부분은 그 곳에 무엇을 채워 넣거나

채워 넣은 것으로 무언가를 얻어 내려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가방 속에 있던 것은 하나 둘 소용을 잃어가고

채움과 비움으로 안달하던 가슴

부끄러워 감추려던 속내도 이제 꽤 흐릿해졌다.

저 이물스러움마저 툭툭 털어내면

어쩌면 이 삶도 한 혹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될까.

 

 

 

 

 

 

-출처 : 『詩하늘』(2012. 겨울)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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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통해서 채움과 비움,

즉 인간의 욕망에 관한 비장한 이야기를

물혹이라는 어휘로 몰고 가려 한다

무던히 채워가던 것들이 어느 날

아무 소용없는 것으로 보일 때

아등바등 하며 모아 모아 가던 것들이

어느 날 물거품이 되었을 때의 허탈함이란

 

 

우리 자체가 물혹일 수도 있다

분명히 선택된 인간임에 틀림없는데

문화와 환경으로 인해 각인된 의식이

나눔이냐 가짐이냐 누림이냐 베풂이냐

기막힌 기로에 서게 된다

화자가 ‘비로소 알게 될까’

고민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성현의 가르침을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완성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

살아온 시간과 생각을 잘못 다스려

나를 어지럽힌 것에 대해

실천적 반성이 필요하다

 

 

 

 

 

                              詩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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