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민 시인의 서재입니다
멍게, 멍게 / 고형렬 본문
멍게, 멍게
고형렬
가장 먼 발바닥부터 바람을 불어넣고
비벼대자 벌겋게 부어올랐다
다리가 팔이 없어지고 척추가 사라졌다
마지막 눈과 코가 지워진 채
장님 무아는 거기 서 있다
비닐의 손바닥만 남아 배꼽이 되었다
그리고 욕망만 제대로 부풀어올라
우주가 되고 가장 어둡고 높은 곳에서
대뇌피질이 되었다
욕망은 부풀었다 꺼질 뿐
터지지 않고 찢어지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는다 진화를 마쳤기 때문에
진화하지도 않는다
서서히 눈과 다리가 생기고 있다
나는 그 이름을 멍게, 멍게라고 부른다
—《시인수첩》2013년 가을호
-------------
고형렬 / 1954년 강원 속초 출생.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청봉 수박밭』 『밤 미시령』『붕새』『유리체를 통과하다』『지구를 이승이라 불러줄까』등.
'좋은 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을 / 이태호 (0) | 2013.09.21 |
---|---|
삼각형이 생각할 줄 안다면* / 김영찬 (0) | 2013.09.14 |
슬픔의 근천 / 장만호 (0) | 2013.09.14 |
가지 않는 길 / 문정희 (0) | 2013.09.14 |
미루나무 연립주택 / 양문규 (0) | 2013.09.09 |
Comments